[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일주일 간의 유럽 출장길에 올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먼저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본사에 방문한 배경을 두고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ASML은 현재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세계 시장에 독점 공급하는 곳으로, 이 부회장이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장비를 경쟁사보다 앞서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는 분석이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CT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과 버닝크 CEO는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Extreme Ultra Violet) 장비 공급계획 및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 ▲AI 등 미래 반도체를 위한 차세대 제조기술 개발협력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시장 전망 및 포스트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미래 반도체 기술 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또 이 부회장은 ASML의 반도체 제조장비 생산공장도 방문해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에도 삼성전자를 방문한 버닝크 CEO 등 ASML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2019년 2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번 미팅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도 배석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대한항공 전세기편을 이용해 서울 김포 비즈니스 항공센터로 귀국한 이 부회장은 "EUV 장비 공급 확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왔다"며 "이번 출장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도 다녀왔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 출장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구현을 위해 EUV 기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2000년대부터 ASML과 초미세 반도체 공정 기술 및 장비 개발을 위해 협력해 왔다. 2012년에는 ASML에 대한 전략적 지분 투자를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말 기준으로 시가 2조 원 이상의 ASML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EUV 노광 기술은 극자외선 광원을 사용해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로, 기존 기술보다 세밀한 회로 구현이 가능해 인공지능(AI)·5세대(5G) 이동통신·자율주행 등에 필요한 최첨단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ASML은 EUV 관련 기술적 난제 해결을 위해 초기부터 ▲EUV에 최적화된 첨단 반도체 소재 개발 ▲장비 생산성 향상 ▲성능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시스템반도체에 이어 최첨단 메모리반도체 분야까지 EUV의 활용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두 회사 간 협력 관계도 확대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이 단 자릿 수 나노미터 급 '선단공정'으로 넘어가면서 EUV 패터닝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라며 "ASML이 만드는 장비는 대당 1천500억 원 안팎으로 천문한적인 가격이지만, 연간 만들 수 있는 EUV 장비가 26대(지난해 기준)로 한정돼 있어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세계 파운드리 업체들이 장비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성장을 위해 국내 화성, 평택 공장 외 미국 오스틴 공장에도 EUV 인프라 구축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EUV 시스템 물량 확보가 절실하다"며 "이 부회장이 ASML 본사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내년에 ASML에서 공급받는 EUV 노광기 예약 대수가 10대 안팎에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마친 후 연내 다른 해외 사업장으로 비즈니스 미팅을 떠날 것으로 관측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브라질, 5월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코로나19가 유럽에 재확산되는 와중에 네덜란드를 찾아 글로벌 현장 경영을 이어가며 사업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인 신속입국 절차가 마련된 베트남과 일본 등이 이 부회장의 유력한 행선지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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