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지난 2001년 미국 비디오 렌털 체인인 블록버스터가 연체료를 부당하게 받았다고 여러 소비자들로부터 피소됐다. 하지만 이 집단 소송에서 승소한 소비자들은 사용기간이 불과 4개월 정도인 1달러 짜리 쿠폰만 받았다. 반면 원고 측 변호사들은 수임료로 무려 925만 달러(한화 106억 원)를 받았다.
#. 지난 2004년 대구 공군 비행장 인근 주민들은 국방부를 상대로 소음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해 지난 2010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1천억 원대에 달하는 승소 금액에도 불구하고, 정작 피해 당사자인 주만 1만 여명이 받은 보상액은 1인당 평균 2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는 자신의 성공 보수와 지연이자 142억 원까지 챙겨 총 3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챙겼다.
법무부가 지난 9월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의 징벌적 손해 배상제 도입 및 집단소송제 도입이 소송 남발로 비용 발생은 물론 기업의 경영활동을 과도하게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소비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기업들의 비용 부담 증가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 등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변호사에게 막대한 이익만 가져다 줄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고 12일 밝혔다. 또 정부 입법예고안이 통과될 경우 30대 그룹을 기준으로 소송비용이 최대 10조 원(징벌적손해배상 8조3천억 원, 집단소송 1조7천억 원)까지 추가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현행 소송비용 추정액 1조6천500억 원보다 6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신규 일자리 창출과 미래 먹거리 산업 투자에 쓰일 돈이 소송 방어비용에 낭비되는 것이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취지가 피해자를 효율적으로 구제하는 데 있지만, 미국 사례가 보여주듯 실제로는 소송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가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가를 상대로 한 지역주민들의 소송에서 소송을 대리한 변호사는 수백억 원의 수임료를 얻었으나 정작 주민들은 평균 수백만 원에 불과한 보상금만 지급돼 논란이 된 사례가 있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남발도 우려된다. 현행 증권집단소송에서는 남소 방지를 위해 '3년간 3건 이상 관여 경력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정부의 집단소송법 입법예고안은 이 제한규정을 삭제했다. 변호사가 제한 없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결과 전문 브로커가 소송을 부추기거나 기획소송을 통해 소송을 남발한 여지가 생긴 것이다.
또 전경련은 집단소송 참가비용이 낮고 패소로 인한 부담이 적은 것도 남소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징벌적손해배상은 실제 손해액보다 최대 5배에 달하는 배상액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결국 소송 망국론이 제기되는 미국처럼 기획 소송 남발로 선의의 기업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더불어 이번 정부 입법예고안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기업들이 될 우려가 커졌다. 막대한 소송비용은 물론, 기존 행정제재, 형사처벌에 더해 민사적 처벌까지 '3중 처벌'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우리 기업들은 과중한 형사처벌과 행정제재, 민사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또 다시 집단소송과 징벌적손해배상까지 도입되면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입을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법체계적으로도 영미법계와 대륙법계 처벌방식이 혼용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영국과 같은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민사적 구제를 중시하기 때문에 과징금, 과태료와 같은 행정처벌이나 형사처벌은 적은 반면, 집단소송이나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로 구제를 한다. 영국은 남소를 우려해 위해 공정거래 분야만 집단소송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독일, 프랑스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행정처벌과 형사처벌이 중심이기 때문에 집단소송이나 징벌적손해배상 제도가 없다. 만약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가 영미법 제도인 집단소송과 징벌적손해배상을 도입한다면 유례가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과잉처벌 국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제도실장은 "지금 가장 시급한 정책 우선순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라며 "정부 입법예고안처럼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제도를 성급히 도입할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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