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또 올해 8월에는 한국을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수출 규제 조치로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첨단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대일 수입 의존도가 90%가량인 만큼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기습적으로 수출 규제에 나섰지만 공급 대란은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각 업체들이 반도체 소재의 공급망과 거래처 다변화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 1년여간 일부 업체는 소재의 국산화 작업에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 등은 액체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하며 일본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화학의 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내 SK머티리얼즈가 생산하는 불화수소(기체)에 대한 테스트를 마치고 공정에 투입할 전망이다.
덕분에 일부 소재의 대일 의존도도 낮아졌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년간 수출규제 3개 품목의 통관 수입실적을 분석한 결과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각각 6%p, 33%p 감소했다. 또 수입처도 벨기에, 대만 등으로 다변화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첨단 소재 영역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양국 간 갈등 장기화에 따른 공급 리스크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는 여전한 상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 기초유분, 플라스틱 제품 등 비민감 전략물자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대부분 80∼90%에 달한다.
특히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 수입의존도가 여전히 90% 이상 유지되고 있다. 또 포토레지스트도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는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용 제품이 아직도 일본 수입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대일 수입 비중은 40.7%로, 오히려 전년도(34.6%) 대비 6.1%p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생산 차질이 크게 벌어지지 않았지만 한·일 갈등이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기업들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이어질 것 같다"며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 재개를 요청하면서 양국 간의 갈등 장기화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스가 정권에서도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국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일본이 첨단소재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정부가 추가 규제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일본의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이 기회를 살려 적절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정부와 일부 기업 오너들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움직이는 모양새다. 최종건 외교부 차관은 지난 8일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수출 규제 완화를 요청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10일 도미타 대사를 만나 기업인 일본 입국 제한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양국 관계가 진전되기 위해선 한일 양국에서 지한파, 지일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기업인 중에선 이 부회장 외에도 스가 총리와 친분이 두터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일본에 머물며 경제 가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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