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금융감독원이 신한은행·하나은행·대구은행에 연장해준 키코 분쟁조정 수락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업계에선 이번에도 재연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코로나19라는 최대 현안에 집중해야한다는 이유에서지만, 사실상 배임 우려를 털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정한 신한·하나·대구은행의 분쟁조정 결정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키코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이다. 정해둔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선 이상 환율이 오르거나, 하한선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손실을 입는다. 키코 피해기업 모임인 키코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의 손실 규모는 3조원 가량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6개 시중은행에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에게 최대 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에 따라 우리은행은 지난 2월 피해 기업들에게 총 42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배상을 거부했다. 다만 씨티은행은 분쟁조정과 소송을 하지 않은 기업에 한해 과거 판례를 기준으로 배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대구은행은 입장을 정하지 못하다가 지난 달 금감원에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네 번째 연장이다. 이사회 구성원이 변동돼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데다, 코로나19 금융지원 등으로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대구은행 모두 아직까지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연장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시중은행에게 코로나19 소방수 역할을 맡기면서, 내부 논의 안건 우선순위에서 키코가 한참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마련된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증권시장안정펀드에 참여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 점포들은 각종 정책자금 대출 수요 등으로 매우 바쁜 상황이다"라며 "소방수 역할과 동시에 은행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도 신경을 써야 하니, 내부 우선순위에서 키코는 많이 밀려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결국 배임 이슈를 털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은행들은 법적 근거가 없이 피해기업에게 보상을 했다간 '주주이익 침해' 등의 이유로 배임 소송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다며 배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된 만큼, 같은 이유를 대더라도 합당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다"라면서 "배임 이슈가 핵심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지원에 라임 사태 등 신경써야 할 사안들이 많으니 은행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의 배임 우려에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윤 원장은 최근 취임 2주년을 맞아 출입기자단과 가진 티타임에서 "금감원 권고에 따라 회사를 살리는 게 과연 주주가치에 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고객이 잘되는 게 주주가치다"라고 말했다.
세 은행들이 다섯 번째 연장을 요청해도, 판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금감원 입장에선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당시 윤 원장도 "금감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얼추 했다"라며 "산업은행은 배상이 안 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조금 더 긍정적으로 봐줄 소지가 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키코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경찰은 키코 사태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달 22일 키코공동대책위원회를 포함한 4개 금융피해사건 피해자 모임인 '금융피해자연대'는 서울지방경찰청에 키코 사건의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냈다.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장은 "사기 판매에 대해 고발했으며, 금감원이 재조사한 자료들을 경찰에 제출한 상태다"라며 "은행들이 전향적인 결단을 해서 고객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서상혁 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