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 지난 2018년 2월.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유례없는 위기에 빠졌다. 바로 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1심 판결에서 실형을 받아 법정 구속되며 '오너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던 롯데그룹은 창립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오너 부재 상황에 처했고, 그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국내외 투자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공약으로 내걸었던 호텔롯데 상장도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신 회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국내외로 동분서주하며 그룹 안정화에 힘썼던 인물은 바로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다. 황 부회장은 30여 년간 신 회장의 곁을 지켜온 명실상부한 롯데그룹 2인자로, 대내외에선 '신동빈의 남자'로 불린다.
2일 재계에 따르면 황 부회장은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한 후 부장으로 재직할 때 신 회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던 신 회장은 상무로 부임해 황 부회장과 호흡을 맞췄고, 그의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해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황 부회장과 함께 갔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황 부회장을 위해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산하 국제부를 새롭게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일본에서 건너올 당시 한국어가 서툴러 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을 초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황 부회장이 신 회장 곁에서 업무를 보좌하면서 신임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황 부회장은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롯데그룹이 매출 100조 원, 재계 5위로 자리잡는 데 일조했다. 신 회장의 국내 일정을 직접 다 관리하며 '비서실장' 역할을 자처했던 황 부회장은 약 24년 간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조직에서 일하며 굵직한 이슈들을 처리했다.
특히 대내외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황 부회장은 그룹의 정책본부를 이끌면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2004년 우리홈쇼핑(롯데홈쇼핑), 2007년 대한화재(롯데손해보험), 2008년 케이아이뱅크(롯데피에스넷), 2009년 두산주류(롯데주류), 2010년 바이더웨이(코리아세븐), 2012년 하이마트(롯데하이마트)등이 대표적이다.
황 회장은 해외업체 인수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2007~2008년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운영 중인 대형마트 '마크로'와 2008년 네덜란드 초콜릿 회사 '길리안' 등을 인수할 때 큰 역할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3년 전후로 KT렌탈(롯데렌탈), 삼성그룹 화학부문 등 굵직한 대형 인수합병도 모두 황 부회장이 이끌었다"며 "신 회장이 롯데그룹 회장으로 올라선 후 다양한 인수합병을 통해 그룹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황 부회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평가했다.
황 회장은 인수합병뿐 아니라 롯데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며 발생한 금융계열사 매각 이슈에도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드러내 주목받았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롯데그룹은 2017년 10월 지주사 전환 후 공정거래법상 2년이 되는 2019년 10월까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소유 금지에 따른 모든 조치를 마무리했다. 2019년 1월에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입찰을 진행해 롯데손해보험 지분은 JKL파트너스에, 롯데카드 지분은 MBK파트너스에 각각 넘겼다. 같은 해 9월에는 롯데지주가 보유한 롯데캐피탈 지분 25.64%와 롯데건설이 보유한 롯데캐피탈 지분 11.81%를 모두 일본 롯데홀딩스의 계열사인 일본 롯데파이낸셜로 옮겼다.
재계 관계자는 "황 부회장은 일 욕심이 많고 추진력이 강한 전략가 스타일"이라며 "그룹에서도 해외진출 및 인수합병, 사업확장 등 전략 중심의 경영 활동을 펼치며 신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황 부회장은 지난 2015년 롯데일가의 '형제의 난'이 일어났을 때도 신 회장 곁을 지키며 그룹 내 입지를 더 탄탄하게 쌓았다. 경영권 분쟁에서 황 부회장은 고(故)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과 함께 신 회장의 조력자로 나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여러 공격을 막아냈다.
특히 황 부회장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2015년 7월 작성한 해임지시서에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 명예회장은 해임지시서에 신 회장과 함께 최측근인 황 부회장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후 황 부회장은 2016년 이인원 전 부회장의 죽음 이후 비어 있던 정책본부장(경영혁신실장) 자리를 2017년 2월에 이어 받으면서 그룹 내 2인자로 우뚝 올라섰다. 또 2017년 10월 출범된 롯데지주의 대표 자리에 신 회장과 나란히 공동으로 선임됐고, 2018년 1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2인자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신 회장과 밀접한 관계인 탓에 다양한 혐의를 받으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롯데그룹 계열사에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롯데그룹 오너일가의 횡령 및 배임 행위를 도왔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신 회장의 실형으로 황 부회장은 오너 공백 기간에 그룹 2인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그룹 안정화에 주력했다. 신 회장이 법정구속된 직후 비상경영위원장을 맡아 그룹 내부 단속은 물론 여러 대외 활동에 얼굴을 내비치며 신 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또 수감 중인 신 회장도 틈날 때마다 면회하며 현안을 보고했다.
특히 2018년 6월에는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 신 회장을 대신해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황 부회장은 신 회장의 서신을 직접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진에게 전달하고 신 회장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황 부회장의 이 같은 조력 끝에 신 회장은 한일 롯데그룹 원톱으로 우뚝섰다. 지난달부터는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 자리에도 오르면서 한일 롯데 모두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회장, 신동빈 부회장 체제로 운영됐다가 신격호 회장이 2017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이후 회장직은 공석이었다. 이번 일로 사실상 롯데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완전히 종식됐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여러 걸림돌들이 해소된 만큼 앞으로 황 부회장은 신 회장을 도와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한국과 일본 롯데 분리작업 등 그룹의 핵심 과제에 좀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며 "신 회장이 2018년 10월에 내놨던 '5년간 50조 원 투자 계획'도 황 부회장이 중심이 돼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다만 올 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여파로 롯데그룹 전체 사업들도 큰 타격을 입으면서 황 부회장은 투자보다 내실 다지기에 더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면세 사업이 타격을 입어 호텔롯데 상장 여부가 불투명해진 데다, 화학·유통 등 주축 사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이에 신 회장도 지난 3월 24일 비상경영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상황 극복 전략을 논의하며 전 계열사들을 향해 사업 전략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경제 위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위기 극복과 그 이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황 부회장은 미래 먹거리 마련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란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 한 해동안 선진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계열사 상장 등 경영 투명성 강화 조치를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황 부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기 둔화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선진국 시장 공략, 적극적 인수·합병(M&A)을 이어감과 동시에 기업공개를 통한 투명한 지배체제를 완성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가 되겠지만 시장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으로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이라며 "전례없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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