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경영 전면에 나선 지 5년차를 맞은 최혜원 형지I&C 대표가 기나긴 터널을 지나 흑자전환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최 대표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녀로 지난 2016년부터 형지I&C 대표직을 맡아 왔다.
이에 패션업계의 시선은 형지의 '맞수' 세정으로 향하고 있다. 세정은 지난해 5월부터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셋째 딸인 박이라 사장이 이끌고 있는 곳이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지난해 세정의 실적이 박 사장의 첫 성적표인 셈이다. 비슷한 길을 걸으며 성장해 온 두 패션기업의 2세 경영인 딸들이 격돌하는 구조이다.
◆ 최혜원 '온라인 승부수' 통했다…"내실·성장 모두 잡을 것"
7일 업계에 따르면 형지I&C는 지난해 매출 1천21억 원, 영업이익 2억2천만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18년 대비 약 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0억 원 가까이 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또 계열회사인 형지엘리트는 지난해 중국 학생복 누적 계약 거래액 387억 원을 기록하며 2018년 대비 310% 성장을 기록하며 호실적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실적은 최 대표 취임 이듬해인 2017년부터 이어져 온 영업적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며, 최 대표가 줄곧 강조해 온 '온라인 집중 전략'의 성과다. 최 대표는 취임 이후 온라인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쇼핑몰·모바일웹·전용앱 개발 등 관련 행보에 박차를 가해 왔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예작·본·캐리스노트 등 브랜드의 온라인 유통 부문을 총괄하는 '뉴비즈니스팀'을 신설하고, F&F·이베이코리아 등 국내외 패션·유통 브랜드에서 20년 동안 일해온 온라인 유통 전문가 김성욱 상무를 팀장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패션업계 부진에도 지난해 긍정적 실적을 달성한 점이 고무적"이라며 "올해는 신규 브랜드의 시장 안착과 예작·본·캐리스노트 등 기존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여 성장과 내실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이 같은 성과가 최 대표의 경영승계에 발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패션 시장의 지속적인 위축에도 긍정적 성과를 달성한 것이자 본, 본이 등 2030 세대를 겨냥한 중고가형 브랜드들이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향후 전망도 밝다는 평가에서다.
특히 이 같은 브랜드들의 성장이 기존 형지의 주요 타겟이었던 중장년 소비자를 넘어 젊은 세대로부터 인지도를 높여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형지I&C는 온라인 중심으로 실적 개선을 이어가고 있어 향후 전망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형지에스콰이아 등 상장 준비중인 계열사도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이번 흑자전환으로 경영승계에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최 대표가 론칭한 브랜드들이 2030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호재"라고 덧붙였다.
◆ '사업영역 확장' 주력 박이라 사장…계열사 수익성 개선은 과제
세정의 전략은 형지와 결이 다르다. 형지의 경우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이를 통한 수익성 개선 및 상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달리 세정은 토종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발굴·성장시킴과 함께, 패션기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유통 기업으로의 진화를 노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확장보다 내실을 탄탄히 다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같은 세정의 전략은 지난해 5월 신규 선임된 2세 경영인 박 사장이 이끌고 있다. 박 사장은 미국에서 MBA를 수료한 후 2005년 세정에 입사해 비서실, 브랜드전략실, 마케팅홍보실 등을 거쳐 사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2007년부터는 계열사 세정과미래의 대표를 맡아 남성복 '크리스·크리스티'를 론칭했고 2010년에는 캐주얼 브랜드 '니(NII)'를 스트리트 브랜드로 리뉴얼해 성공을 거뒀다. 또 2013년에는 새로운 유통 플랫폼 '웰메이드'를 선보임과 함께 프리미엄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 두보'를 론칭해 파리 편집숍 '콜레트'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박 사장은 취임 이후 첫 사업으로 주얼리 브랜드 '일리앤(12&)'을 론칭시키고, 복합 쇼핑몰 '동춘 175'와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동춘상회'도 연이어 시장에 안착시키며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취임 직전이던 지난해 4월에는 온라인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코코로박스'도 인수하며 유통사업 확장 의지도 밝힌 바 있다.
다만 지속적인 수익성 하락은 과제로 꼽힌다. 세정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지난 2011년 6천895억 원을 기록한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박 사장 취임 직전해인 2018년에는 4천344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박 사장이 2007년부터 대표로 일해온 세정과미래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2011~2018년 기간 동안 매출액은 844억 원에서 630억 원으로 줄어들었으며, 영업이익도 19억 원 흑자에서 52억 원 적자로 내려앉았다.
이에 대해 세정 관계자는 "국내 패션사업이 정체되며 의류·주얼리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인 만큼 사업 다각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동춘 175·동춘상회·코코로박스를 통해 체험 중심의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브랜드 마케팅 등을 통해 자사몰 고객 유입을 늘려 온라인 사업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업 체질 혁신을 목표로 잡고 사업전략을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이 같은 형지와 세정의 '엇갈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주목하는 모습이다. 그 동안 가두점 성공 등의 성과를 중심으로 연매출 1조 원을 넘어서는 패션 중견기업으로 자리잡았던 두 기업이 2세 경영 체제 시작과 함께 다른 전략적 방향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세확장 및 IPO를 통한 '퀀텀 점프'를 노리는 형지와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 진화를 노리는 세정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주목하고 있다"며 "패션업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해 볼 시,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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