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영웅 기자]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전기차 배터리 소송에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렸기 때문이다.
ITC의 이번 결정으로 오는 3월 초로 예정된 변론(Hearing) 등의 절차 없이 10월5일까지 ITC의 최종결정만 남게 됐다. 조기패소 판결이 확정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관련 부품 및 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하다보니 SK의 배터리 사업이 최대 위기에 처하는 모양새다.
◆미 ITC, SK이노베이션의 증거훼손 혐의 '인정'
미 ITC는 14일(현지시각)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 소송과 관련하여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LG화학은 증거개시절차(discovery)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이 포착됐다며 조기패소판결 등의 제재를 ITC에 요청한 바 있다.
증거개시절차란 재판 상대방이 소송 정보를 요구하면 제출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ITC는 증거개시절차 과정에서 위법사유가 발견되면 추가재판 없이 원고 측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판결까지 내리다 보니 ITC의 이번 판단이 두 기업간 소송의 최대변수로 떠올랐다.
LG화학은 ITC의 포렌식 명령에도 SK이노베이션이 전문가를 고용해 자체 포렌식을 진행, 증거를 인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당사는 여론전에 의지해 소송을 유리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경쟁사와 달리 소송에 정정당당하고 충실하게 대응 중"이라고 반박했다.
그동안 업계에서 LG화학이 승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ITC는 이미 'SK이노베이션이 자료를 삭제하고 있다'며 포렌식 조사를 요청한 LG화학의 요구도 수용한 데다 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은 LG화학의 조기패소 요청에 찬성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ITC에 제출하기도 했다.
ITC가 LG화학의 조기패소판결 요청을 수용하면서 SK의 배터리 사업은 최대난관에 처하게 됐다. 조기패소판결 확정시 SK의 배터리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 공장에 1조9천억원 규모의 투자에 이어 1조원 규모 추가투자도 계획 중이다.
◆LG-SK 물밑협상 시작될 듯…LG화학 "SK이노, 소송 방해에 유감"
LG와 SK의 배터리 소송전에서 추(錘)가 기운 만큼 물밑 협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 대기업 모두 오는 10월에 진행될 ITC 최종판결까지 소송을 끌고 가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더욱이 중국의 배터리 굴기 속 국내 기업간 소송으로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특허침해 소송의 경우 판결 직전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LG화학은 지난 2017년 중국 ATL을 상대로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ITC 최종판결 직전 SRS(안전성 강화 분리막) 매출의 3%를 기술 로열티를 받기로 하며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특히 정부 역시 두기업의 소송에 적극 개입해 중재할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이 최종 패소할 경우 정부 역시 중재 능력 부족으로 기업의 피해만 키웠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6월 예비판정 등 소송의 윤곽이 잡힐 즈음 협상을 주선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미국 정부 역시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관련 부품이 수입금지를 당할 경우 SK의 미국 배터리 사업은 사실상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미국 내 일자리와 투자 확대에 사활을 건 트럼프 행정부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두 기업을 물밑에서 중재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LG화학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조기패소판결이 내려질 정도로 공정한 소송을 방해한 SK이노베이션의 행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로 당사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된 만큼 남아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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