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윤선훈, 황금빛 기자] 중국 상하이에서 국내 무역회사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A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피해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보도를 볼 때마다 속이 타들어간다. 이달 4일 오후 2시 기준 중국 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는 2만3214명, 사망자는 426명이다. 춘절(구정 설) 직후 매일 2천~3천명의 확진자가 추가되면서 중국 전역의 불안감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상하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지인 우한으로부터 860km 떨어져 있다. 차량으로 9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도 인구 2천400만명의 중국 최대 도시 거리는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같은 시각 상하이 확진자는 208명, 심지어 사망자도 한 명 나왔다.
상하이 시가지에 즐비한 사무실은 모두 텅텅 비어 있는데 A씨는 춘절 이후 줄곧 재택근무 중이다. A씨는 "중국 대부분의 기업들이 중앙정부와 중국 각 성 방침대로 춘절 연휴를 긴급히 연장하면서 강제휴무에 들어갔다"며 "외국계 기업들의 경우 주재원들이 대부분 철수한 가운데 우리 가족도 지난주 긴급 귀환했다. 중국 전역이 비슷한 분위기 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휴무' 들어간 '세계의 공장'…추가 연장 가능성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패닉으로 '세계의 공장' 중국이 사실상 셧다운에 들어갔다. 4일 코트라와 현지 진출 일부 기업에 따르면 홍콩을 제외한 중국 31개 성이 춘절 연휴를 2월 9일까지 연장했다. 춘절은 구정 설의 중국식 이름이다. 춘절 연휴는 원래는 지난 1월 24일부터 30일까지였다.
매년 춘절 연휴는 공식적으로 일주일, 연차를 감안 통상 열흘 내외다. 중국 대도심 전역의 귀성 행렬과 함께 대대적인 여행 인파가 해외로 나가는 만큼, 춘절 기간은 중국에선 손에 꼽히는 명절이면서도 통상 가장 소비가 집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춘절이 여느 때와 180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 때문일다. 중국 정부와 각 성의 조치로 춘절 연휴를 이달 2일까지 연장했지만, 확산세가 잡히지 않으면서 다시 9일로 연장했다. 신종 코로나 추가 감염을 위해 강제적으로 전국 각 사업장의 문을 닫는 고육지책이다. 업무가 필요한 경우 재택근무를 유도해 가급적 감염 위험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겠다는 것이다.
현재 이같은 조치로 중국 내 제조업 공장은 물론 물류·운송, 건설, 도소매 및 서비스업 등 대부분의 사업장이 가동 중단된 상태다. 코트라 관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가동 중단 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는 첨단산업 일부와 의료·방제 등 코로나 사태에 시급한 산업 정도만 비상 가동 중"이라며 "중국인들이 아예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 감염이 더 확산될 경우 추가적으로 춘절연휴, 즉 강제휴무를 더 연장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 현지 기업은 물론 중국 내 생산, 판매법인을 둔 해외기업들도 어느 때보다 촉각이 곤두선 상황이다.
단적으로 중국 현지 진출 글로벌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의 경우 쑤저우 내 세탁기, 냉장고 등 대규모 가전 공장을 운영 중이다. 톈진에선 TV공장을 운영 중이다. 이 두 곳 모두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로 강제휴무에 들어갔다.
상하이에 운영 중인 중국 최대 규모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토어는 물론 주요 매장도 휴점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현지 출장제한 권고를 내렸고 (발병지인) 우한은 지금 출장 자체가 금지된 상황"이라며 "사태 초반부터 TF를 구성해 면밀히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우시 지역에 D램 공장을 운영한다. 각각 연간 세계 공급량의 8%, 11%에 이르는 규모인데 필수 인력만으로 가동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중국 내 소재, 부품 등 공급체인이 이상이 생길 경우 생산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줄줄이 문닫은 삼성·애플 매장, 생산공장 대부분 '셧다운'
중국은 세계 스마트폰의 70%를 생산한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급속히 판매량을 늘리는 가운데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 공장이 하필 우한에 위치해 있다. 우한시가 포함된 후베이성은 13일까지 관내 모든 사업장에 강제휴무를 적용한다. 중국 전역의 애플 스토어도 9일까진 일단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화웨이의 경우 지난 3일부터 공장 재가동에 들어갔다. 화웨이는 중국 ICT 산업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미중 무역분쟁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중국 내 '핵심 산업'으로써 당국으로부터 예외를 인정받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다만 오포, 비보, 샤오미 등 경쟁 스마트폰 업체들은 9일까지 생산 및 업무 중단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국이기도 하다. BOE, CSOT, 비전옥스 등 디스플레이 업체들과 정밀화학 소재, 장비 업체들도 신종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다. 장시간 정밀공정으로 운영되는 패널 부문은 최소 인력으로 생산이 유지되고 있지만 모듈 공정은 중단 대상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양대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부품업체들도 현지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당장 우한만 해도 '중국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인구 1천만 규모 자동차 공장 지대다.
신종 코로나 확산 초기부터 된서리를 맞은 셈인데 GM, 닛산, 르노, 혼다, PSA의 우한 내 공장들이 모두 중단 상태다. 폭스바겐도 베이징 공장 운영을 중단한 가운데 상주 인력들은 지난 3일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BMW의 선양 공장은 물론 현대·기아차의 충칭, 사천, 베이징, 창저우 공장도 줄줄이 강제휴무에 들어갔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슷한 감염병 사태인)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는 홍콩, 중국 남부 지역에 집중됐다"며 "지금처럼 중국 산업 자체가 마비된 상황은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세계 제조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중국의 셧다운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제조업의 공급망 자체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며 "신종 코로나 사태는 중국과 인접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석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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