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환경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박스만 남겨두고 테이프·노끈만 없애는 건 지나친 탁상행정 같습니다. 소비자가 가져오는 테이프는 환경을 해치지 않는 건가요?"
2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소비자 N씨(55·남)는 '내년 1월 1일부로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와 노끈이 없어지는 것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 같이 답했다.
N씨는 이어 "대형마트에서는 생수·우유·주류 등 대용량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제품들은 '딱지접기' 식으로 박스를 만들 경우 흘러내릴 가능성이 높다"라며 "소비자 불편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고, 마트에서 얼굴을 붉힐 일만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 "자율포장대 노끈·테이프 철수는 소비자 불편만 불러오는 탁상행정"
지난 8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 4사와 환경부가 체결한 자율포장대에서 종이박스와 테이프, 노끈 등을 철수하기로 한 자율협약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업계와 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당시 마트 4사와 환경부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3곳 기준으로 연간 658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마트 자율포장대를 완전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종이박스를 사용하지 않는 제주도 지역의 성공 사례를 전국에 확산시켜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장바구니 사용을 활성화시킬 의도에서였다.
이 같은 방안에 소비자들은 쇼핑에 불편이 가중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업계와 환경부는 테이프와 노끈은 치우고 종이박스를 남기는 것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다만 이 같은 '타협안'에도 대다수 소비자들은 자율포장대가 없어지면 소비자 불편만 커질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이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던 소비자 K씨(40·여)는 "마트에서 제공하는 장바구니는 종이박스에 비해 크기도 다양하지 않고, 상단을 덮지 못하게 될 경우 오히려 더 위험한 면이 있다"라며 "또 집에 가져가서 버리면 되는 종이박스와 달리 보증금을 환불받기 위해 다시 마트로 가져와야 하는 만큼 더 불편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비자 M씨(43·남)도 "자율포장대에서 제공되는 박스는 애초부터 한 번 이상 사용한 '폐박스'이기 때문에 테이프 없이 접어서 포장하기에는 내구성 문제가 크다"라며 "애초에 환경을 생각한 조치였다면 자율포장대 자체를 없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테이프와 노끈만 없애는 건 코미디같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업계 "소비자 불편 최소화하고 환경부와 협의도 이어갈 것"
대형마트 업계는 이 같은 소비자들의 비판 속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다. 자율포장대 폐지 자체가 대형마트 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의견인 만큼 입장을 뒤집기 어렵고, 대형마트 업계에 대한 규제가 점점 거세지는 상황 속 정부가 주창하는 환경 보호라는 '대의' 또한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온라인 시장의 공격적 확장 속 실적 부진을 겪으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중인 와중에 '종이박스'를 이유로 소비자들을 잃을 수도 없는 만큼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 속 업계는 자율포장대 논란이 진행됨과 함께 재활용 가능 쇼핑백의 크기를 키우고, 플라스틱 포장 박스를 대여함과 함께 일부 마트는 테이프를 종이테이프로 대체하려 시도하는 등 대안을 제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소비자들에게 생소함과 불편함으로만 다가왔고 결국 좋은 반응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특히 종이테이프를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종이테이프가 표면만 종이일 뿐 기존 테이프와 같이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져 대체 시도 자체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는 현재 진행중인 조치를 이어감과 함께, 시행 이후 제기되는 민원 내용 등을 종합해 보완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환경부와의 추가적 협의를 이어가 자율포장대 존치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대형 장바구니 추가 개발, 플라스틱 바구니 제공 등의 조치를 통해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며 "다만 환경 보호라는 대의를 위해 진행하는 일이라 해도, 테이프와 노끈 등을 없앤 것은 사실상 종이박스를 쓰지 말라는 말과 같아 불편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제기되는 민원사항 등을 종합해 자율포장대 존치 여부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부와의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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