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일본 정부가 28일을 기해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우대국(백색국가,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결국 강행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장기화될 조짐이다. 최근 불매운동 성격 역시 일시적 사회운동을 넘어 자발적인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리얼미터의 불매운동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0% 이상이 '일본이 경제 보복을 철회해도 불매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일상 생활에서 일본 제품 자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유통가에서는 행여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안 가고 안 산다'…일본 불매운동에 패션·뷰티업체 '치명타'
일본산 불매운동의 타깃에 오른 유니클로는 지난 7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 이상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클로는 불매운동 초기 대표적인 일본 브랜드로 지목된 후, 일본 본사 임원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등의 실언으로 인해 꾸준히 구설수에 올라온 바 있다.
이 같은 안일한 대응은 가뜩이나 일본 정부의 경제 도발로 감정이 나빠진 한국 소비자의 분노를 더 자극했다. 결국 유니클로는 최근 종로3가점, 월계점, 구로점 등을 폐업함과 함께 전 직원 유급휴가를 검토하는 등 불매운동에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의 주요 목표가 돼 지금에 상황에 이르렀다면, 클렌징 오일 등으로 유명한 DHC코리아는 스스로의 '혐한' 행적으로 인해 사실상 한국 시장에서 퇴출될 상황에 몰렸다. DHC코리아는 일본 DHC의 자회사 DHC테레비가 혐한 방송을 내보낸 것이 이번달 초 국내에 알려지며 대대적인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이에 올리브영 등 헬스앤뷰티(H&B) 스토어에서는 DHC의 제품을 재빨리 철수시켰다.
논란이 거세지자 김무전 DHC코리아 대표가 지난 13일 공식 사과했지만 DHC테레비는 이를 "한국 지사장이 멋대로 한 것"이라며 꾸준히 혐한 방송을 이어가며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DHC코리아는 결국 26일 국내 온·오프라인 판매처를 정리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사실상의 철수 작업에 돌입했다.
유니클로와 DHC를 통해 불매운동에 자신감을 얻은 소비자들은 '제2의 유니클로' 찾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ABC마트·데상트·시세이도·GU 등 일본계라는 인식이 비교적 낮았던 업체들이 다음 목표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들 브랜드의 관련 정보에 대해 활발히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독려하고 있으며, 특히 유니클로의 자매브랜드로 알려진 GU의 경우 개점도 하지 않은 용인 롯데몰 수지점 2호점, 영등포 타임스퀘어 3호점이 '선제적 불매운동'의 대상으로 지목돼 있다.
◆주류업계 '판매중단'·식품업계 '원산지 검증' 작업 분주
불매운동 전 시장 1위를 차지하던 일본 맥주의 아성도 무너졌다. 지난달 일본 맥주 수입액은 434만2천 달러였다. 6월 대비 45% 줄어든 수치다. 특히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기간에는 전년 동기 대비 수입량이 98%나 줄어들었으며, 일본 맥주는 수입맥주 시장 1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내려앉았다.
시장에서는 꾸준한 일본 주류 퇴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7월 초 소규모 마트에서 일본 주류가 퇴출된 데 이어 같은달 말 대형마트와 편의점도 4캔 1만 원 할인행사 제외, 발주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업계는 이번달에도 일본 맥주 퇴출 움직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식품업계는 일본산 원료를 배제하기 위한 움직임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불매운동 초 논란이 된 햇반에 사용되는 일본산 미강 추출물을 국산으로 변경했다. 미강 추출물은 밥에 맛과 향, 윤기를 더하는 첨가제로 0.1%밖에 첨가되지 않지만 불매운동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또 오뚜기도 '맛있는 오뚜기밥' 용기 중 5% 가량을 차지했던 일본산 용기 사용을 중단했다.
이 외에도 대상, 삼양사 등 회사들도 자사 제품에 포함되는 일본산 원료를 대체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산 향신료 의존도가 높은 제과업계와 유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일본산 이상의 품질을 가진 대체재를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대한 신속히 일본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허니향과 커스타드향 등 일본상 향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오리온은 테스트용 상품에만 사용했을 뿐이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롯데제과는 '쌀로별'에 일본산 쌀을 사용한다는 소문에 발빠르게 중국산을 사용한다고 부인했으며, 해테제과도 바닐라향, 레몬향 등 10여 종의 일본산 향신료를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내부 검토에 돌입했다.
또 매일유업과 남양유업도 일부 가공유 제품에 들어가고 있는 일본산 향료를 대체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담배는 못 끊어도 메비우스는 끊는다'…JTI마저 타격
'메비우스, 카멜' 등으로 이미 시장에 자리잡았고, 중독성이 강한 제품 특성상 '충성고객'이 많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됐던 담배업계에서도 '일본 침몰'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내에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유일한 일본 회사인 JTI는 지난 7월 11일 예정됐던 전자담배 신제품 '플룸테크'의 발표 행사를 내부 사정을 이유로 돌연 연기했고, 업계는 이를 JTI가 불매운동에 영향을 받은 첫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플룸테크'는 시장에 공식 출시된 이후 적극적 마케팅 활동은 커녕 정상 판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제품 출시까지 어렵게 만든 불매운동의 영향은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우리나라가 지난달 JTI의 생산기지인 필리핀으로부터 수입한 궐련 담배는 403톤으로 지난달 대비 7.3% 줄어들었다. 지난 2년간 7월에 6월 대비 많은 양의 담배를 수입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이례적 흐름으로, 업계는 이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JTI코리아 제품의 소매시장 점유율은 6월 10%대 초반에서 지난달 한 자릿수인 9%대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수 차례 한일 갈등으로 인한 불매운동이 불거졌음에도 점유율을 항상 유지해 올 정도로 고객 충성도가 강한 JTI 브랜드였지만 이번에는 불매운동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업계는 이 같은 불매운동 정교화·조직화 현상이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거세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며, 시민단체들도 불매운동 관련 집회를 통해 기업들의 불매운동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대중들에게 일본 제품 관련 정보를 '안내'하는 모습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 불매운동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등 자영업단체들은 28일 서울 광화문 인근 일본대사관 소녀상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일본 제품 판매중단 확대 및 식품첨가물 원산지 추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한상총련은 롯데, CJ, 농심 등 대기업들이 수입한 일본산 식품첨가물이 사용된 제품과 일본 내 원산지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또 이 같은 일본산 식품첨가물 사용 여부를 자체 조사하고, 결과를 종합해 국회와 정부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시위에서 연사로 나선 김성민 한국마트협회 회장은 "아베 일본 총리가 공식적으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첫 날 이를 규탄한다"며 "전국의 자영업자들은 일본의 적반하장식 경제보복을 용서할 수 없으며, 또 다른 형태의 판매중단과 불매운동에 나설 것"이라 말했다.
이어 "식품 첨가물은 물론 방사능 문제까지 있는 원료들을 정확히 추적해 타격할 것이며, 먼지 하나까지 한국 시장에서 추방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한일 정부간의 첨예한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감정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만큼, 한일 관계가 원만해진다 하더라도 불매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되고 있다.
학계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인 일본과의 분쟁이 정부 차원에서는 외교적 갈등이겠지만, 국민들에게는 마음의 상처"라며 "외교적 갈등이 해결된다 해도 이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그만큼 일본 제품을 일상 생활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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