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을 겨냥 '가장 나쁜 착취자(the single worst abuser)'로 거론하면서 국내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베트남 제재조치를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26일 일본 G20 정상회담 출국 전 폭스 비즈니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이동하고 있다. 베트남이 중국보다 훨씬 더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며 "매우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중국에 이어 국내 제조업계의 핵심 파트너다. 삼성전자의 경우 연간 판매 스마트폰 3억대 중 절반이 베트남에서 만들어진다. 전방위 보호무역에 나선 트럼프의 발언으로 국내 업체들의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구체적 답변을 내놓진 않았다. 다만 "베트남과 논의 중(we're in dicussions with Vietnam)"이라며 "베트남은 가장 나쁜 착취자"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이번 G20 정상회담과 미중 단독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인 가운데 미국의 다음 제재 대상이 베트남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한편, 베트남 정부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베트남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395억달러(약 45조원)에 달했으며, 올해 들어 5월까지 대미 수출은 4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올 5월까지 베트남의 대미 흑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한 170억달러(약 19조원)가량이다. 트럼프 정부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같은 대미 흑자의 급증이 중국의 대미 수출 우회로일 가능성이라는 점이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보복관세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수출 후 미국으로 재수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500억달러 규모 중국 수입품에 대한 25% 보복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6월 들어 2천억달러 수입품에 대해 동일한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만족할 만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3천억달러 규모 추가 관세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다.
실제 베트남의 대중국 수입도 올해 들어 5월까지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대미 수출 핵심 품목인 전자제품, 기계류의 수입은 각각 80%, 30% 증가했다는 게 미국 정부 인식이다. 대중국 제재를 위해 베트남에 대한 고삐를 조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베트남이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의 핵심 교역국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은 수출의 70%를 현지 진출 해외기업에 의존한다. 그 중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절대적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베트남법인의 지난해 수출액이 68조원으로 베트남 전체 수출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에선 스마트폰 공장을, 호치민에선 TV·세탁기 등 가전제품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하노이 공장에서만 10만명이 근무하면서 삼성전자의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중 절반을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LG전자의 경우 하이퐁 공장에서 스마트폰, 생활가전 제품을 생산한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도 함께 진출해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 부품을 공급한다. LG경제연구원 심형순 선임연구원은 "지분투자 등 간접투자까지 포함하면 국내 주요 대기업 대부분이 어떤 형식으로든 진출한 상황"이라며 "인건비 수준, 인프라 유무를 고려하면 다른 아세안 국가들은 아직 베트남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처럼 베트남에 보복관세를 물릴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러나 이달 초 불법이민 문제를 두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멕시코에 중국과 동일한 25% 보복관세 부과를 갑작스레 예고하기도 했다. 멕시코의 경우 중국에 이은 미국의 최대 적자국이다. 베트남은 멕시코 다음으로 미국의 3위 적자국이다.
국제무역연구원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정부가 무역불균형을 이슈로 삼으면서 개별 국가들과 협상을 확대하고 있다"며 "베트남 당국만이 아니라 현지 진출 다국적 기업들도 매우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석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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