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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氣살리자①] 독려할 땐 언제고 이젠 지주사 옥죄기


일감몰아주기 규제·지주사 요건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바빠진 재계

요즘 재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업하기 정말 힘들다'라는 푸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재계를 둘러싼 옥죄는 환경이 심상치 않다. 더욱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식의 정책 일관성이 훼손되면서 재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바짝 조이고 있는 규제의 족쇄를 풀어 기업들의 기(氣)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기업의 확장성을 저해하는 족쇄들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1980년 제정 이래 38년 만에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내용 중 하나는 지주회사 제도이다.

그동안 정부는 1997년 IMF(외환위기)를 겪은 뒤 당시 순환출자고리 형식의 지배구조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주회사 제도를 1999년 4월에 도입했다. 이에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 장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 같은 장려 정책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판단 아래 전면 개편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책변화에 지주회사로 전환했거나 추진하던 상당수 그룹들이 혼란에 빠진 상태다.

3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재계가 지주회사 요건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땐 각 그룹마다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의 지배구조 개편에 상당한 파장이 우려되서다.

일부 그룹들이 서둘러 리스크 해소에 나서고 있지만, 법안이 통과될 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 일감몰아주기 규제·지주사 요건 강화

지주회사 개편에는 크게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와 지주회사 행위요건 강화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회사의 총수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 30%, 비상장 20%에서 상장·비상장 모두 2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또 이들 기업이 지분을 50%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기준이 강화되면 규제대상 기업이 지금보다 두 배이상 늘어나게 된다.

올해 지정기준 231개 기업이었던 규제 대상회사에 총수일가 지분이 20~30%인 상장사 27개, 이들 회사가 지분을 50% 이상 초과 보유한 자회사 349개가 추가되면서 규제 대상 기업이 607개로 확대된다.

지주회사의 요건도 이전보다 강화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요건은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경우 비상장사 발행주식총수 기준 40% 이상, 상장사 2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 법안에서는 비상장사 50%, 상장사 30% 이상으로 높아진다.

현시점에서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상장사 지분율 요건(20%->30% 상향)을 적용하면 대기업 8곳, 중견기업 25곳 등 총 33곳의 지주회사가 추가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소요되는 자금만 13조원 규모다.

다만 기존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 없이 신규편입 자·손자회사로 제한했다. 그렇더라도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했던 나머지 그룹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같은 일감몰아주기 규제와 지주회사 요건강화 배경에는 제도의 악용 때문이라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9월 말 기준 173개 지주회사와 소속된 자·손자·증손회사 1869개를 분석한 결과, 일부 그룹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면서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2배 이상 확대한 것으로 봤다. 또 지주회사로 전환한 그룹의 경우 다른 그룹보다 일감 몰아주기 가능성이 높은 내부거래 비중이 2배 가까이 높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순환출자 제도의 대안으로 지주회사 제도 도입을 적극 장려한 것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더욱이 재계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 바빠진 재계, 서둘러 계열사 재편…지주사 전환 적신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속도를 내면서 재계도 바빠지고 있다. '급한 불이라도 끄고 보자'는 심정으로 일감몰아주기 타켓이 될 만한 계열사를 재편하고 나선 것이다.

LG그룹은 비상장 계열사인 서브원이 보유한 MRO(소모성자재구매 부문) 사업 분할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광모 회장 체제 이후 첫 일감 몰아주기 해소 조치이다. 서브원은 지주회사인 ㈜LG가 지분 100%를 갖고 있으며, ㈜LG는 구광모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46%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부동산 개발회사인 SK디앤디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최 부회장이 갖고 있던 지분 24%(387만7500주)를 주당 4만4천원에 정리한 것이다. 이 역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정보기술(IT) 서비스 계열사인 코오롱베니트 지분 전량(49%)을 코오롱에 현물 출자했고, LS그룹도 총수 일가가 보유하던 가온전선 지분(37.6%)을 LS전선에 매각했다. 이해욱 대림그룹 부회장은 장남과 함께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개발업체 에이플러스디 주식을 계열사인 오라관광에 증여했다. 한화는 지난해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주식을 전량 보유하고 있던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존속)과 한화S&C(신설)로 물적 분할한 바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소가 가능한 이슈다. 무엇보다 난제는 지주회사 전환이다. 이번 법 개정이 통과될 땐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했던 상당수 그룹들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어서다.

일례로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했던 삼성이 그렇다. 그동안 가능했던 시나리오 중 하나인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현행 기준인 20%까지 추가 취득하더라도 수십조원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SK그룹이 신중히 검토 중인 SK텔레콤의 중간지주회사 전환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물적분할해 중간지주사(투자지주사)와 사업회사(통신회사)로 분할하고, 중간지주사 밑에 사업회사와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등을 두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다.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지분율 20.1%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정거래법에서는 9.9%포인트 더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소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른 그룹들도 원점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창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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