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면세점에 판매직을 위한 의자를 놓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보세구역이라는 특성상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상품을 들여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출이 늘수록 휴게실·화장실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대다수의 판매직 노동자들이 족적근막염과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습니다." (김인숙 부루벨코리아 노조 회계감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백화점·면세점·대형마트 판매직 노동자들은 2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가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매장에 의자를 비치하도록 한 지 10년이 됐지만, 현실은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다.
이날 김현우 한국시세이도 노조위원장은 "과거 백화점 폐점시간이 저녁 7시30분이었는데, 현재는 10시까지 연장하는 곳도 있다. 개점 전 영업 준비부터 폐점 후 마무리까지 10시간 이상을 서서 일하지만 의자는커녕 잠시나마 쉴 수 있는 휴게실도 변변치 않다"며 "화려한 건물 안에서 병들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민정 대형마트노조 사무처장 역시 "최근 이마트가 계산대 의자를 전면 교체했지만, 여전히 앉지 못하는 의자일 뿐"이라며 "최근에도 한 계산원이 의자에 앉자 마트 관리자가 '의자에 앉으시면 안 됩니다. 앉으라고 준 의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외국에선 계산원이 앉아서 일을 하는데, 우리나라만 노동자 마음대로 앉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노동·여성 관련 단체들은 판매직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를 주장하며 '서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에게 의자를'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에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떄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춰 둬야 한다'를 마련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정에 그치다보니 유명무실한 조항에 그쳤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해 8~9월 전국의 유통매장 서비스 판매직원 2천2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 가운데 16.3%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응답자의 35.4%가 1개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었다. 질환별로는 디스크(24.1%)가 가장 많았고 족저근막염(22.2%), 방광염(18.2%), 하지정맥류(17.2%) 순이었다.
실제 이날 대형 유통업체를 둘러본 결과, 면세점엔 의자가 비치돼 있지 않았으며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판매직 노동자들은 의자가 있음에도 서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백화점 판매노동자는 "계산대 앞에 의자가 있기는 하지만 한 개 밖에 안 된다. 한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3~4명인데 의자를 하나만 뒀다는 것은 결국 앉지 말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 8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작업장 내 휴게시설을 설치하고, 휴게실 면적은 1인당 1㎡, 최소 6㎡미터를 확보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만약 건물 외부에 휴게실에 설치할 경우 100m 이내나 걸어서 3~5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곳에 마련하도록 했다.
또 고용부는 지난달부터 청소·경비용역 사업장과 백화점·면세점 취약사업장을 중심으로 휴게시설 설치・운영 등에 대한 실태점검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업체에서는 급히 의자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 실태점검 체크리스트에는 의사 비치 여부만 포함도 돼 있어,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하는 현실 등은 반영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판매직 노동자들은 고용부의 강력한 실태 점검과 처벌 조항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고용부 실태조사에 발맞춰 대형 유통매장들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노동부 제출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형식적인 수준"이라며 "고용부의 강력한 실태점검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사무총장 역시 "법으로라도 처벌 조항을 두어 서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앉아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고용부 지침이 단 시간 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직원 휴게공간도 확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윤지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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