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재정분석시스템 자료 유출을 둘러싼 여야의 전면 대치가 점입가경이다. 특히 심 의원이 확보한 47만건의 재정자료 중 청와대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일부를 공개하면서 갈등은 말 그대로 '일촉즉발' 양상이다.
기획재정부가 심 의원 본인에 대한 검찰 고발로 엄포를 놓은 가운데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사건을 '국가기밀 불법탈취'로 규정하며 공세를 대폭 강화하는 중이다. 국회 윤리위원회에 심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상정한 가운데 심 의원의 국회 기획재정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정감사를 열흘가량 앞둔 상황에서 국감 파행까지 거론하고 있다.
◆한국당 "靑 친구들, 기고만장" 공세 확대
28일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당 지도부 회의에서 "어떻게 김정은에게는 그렇게 둘도 없는 막역한 사이를 보이면서, 협치를 주창하는 제1야당은 추석 전 국정감사 자료를 확보했다고 해서 압수수색을 하지 않나, 국회의원을 고발하지 않나, 극한의 대결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청와대와 정부를 맹비난했다.
김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을 검찰에 고발한다는 기재부의 오만방자와 기재부를 뒤에서 조종하는 문재인 정권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요즘 청와대 친구들이 너무 기고만장하다"고까지 덧붙였다. 김 원내대표와 당 원내 지도부는 전날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한 데 이어 이날은 대감찰청과 대법원까지 검찰수사와 영장발부에 대한 항의 방문했다.
이번 '심재철 사건'은 추석 연휴 직전인 21일 검찰이 심재철 의원실과 보좌진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극한 대치로 치닫는 양상이다. 심재철 의원 보좌진이 이달 초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의 재정분석시스템 접속, 현 정부 출범 직후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37개 정부기관 47만건의 자료를 열람, 다운로드한 데 대해 기재부가 검찰에 고발한 결과다.
기재부에 따르면 재정분석시스템은 정부기관의 광범한 예결산, 재정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각 부처와 기관은 물론 국회 실무자들에게도 일부 접근이 허용된다. 문제는 심 의원 보좌진이 시스템 오류를 이용한 방식으로 접근 권한이 없는 비인가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열람, 이를 무단으로 수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심재철 의원이 소속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관 기재부, 국세청은 물론 대통령 비서실과 안보실, 경호처 등 청와대도 포함됐다는 게 기재부 입장이다. 국무총리실, 법무부와 함께 헌법재판소, 대법원,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재정 기록도 포함됐다고 한다. 심재철 의원실과 자유한국당은 국정감사 대비 차원이라는 이유지만, 소관 상임위의 정보 접근 범위를 크게 넘어섰다는 것이다.
또 심 의원이 27일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내역 일부를 공개하면서 갈등은 더 확산되는 상황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상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없는 평일 심야, 법정 공휴일과 주말에 2억4천만원가량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236건 3천132만원은 호프집, 막걸리집, 포차,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 와인바 등에서 사용됐으며 1인당 10만원 내외 고급음식점이 70건으로 1천197만원어치가 사용됐다. 사용처가 불분명한 인터넷결제가 500만원가량(13건), 백화점에서 주말과 휴일 등 1천566만원(133건), 평일 7천260만원(625건) 사용됐다.
심재철 의원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청와대가 사용이 금지된 시간대를 비롯해 주말과 공휴일에도 업무추진비를 상당히 많이 사용했고, 술집과 바 등에서도 업무와 무관하게 사용한 정황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불법적인 자료의 외부 유출 및 공개가 계속해서 반복돼 심 의원을 사법기관에 추가 고발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며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여야 긴장 '최고조' 한국당 내심 '불안'
민주당 기재위 소속 의원들은 28일 "제3자에게 누출될 경우 국가안위 및 국정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 비공개자료를 불법적으로 취득, 유포하는 사상 초유의 '국가재정시스템 농단'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며 심 의원의 기재위 사퇴와 검찰수사 협조를 촉구했다.
기재부가 심재철 의원실 관계자들을 정보통신망법, 전자정부법 등 위반으로 고발하고 현재 심 의원도 기재부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한 상황이다. 피감기관인 기재부와 감독기관인 심 의원 본인이 맞고소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국정감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심 의원이 불응할 경우 국정감사를 포함한 여야간 의사 일정 협의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4·27 판문점 선언 비준안 처리 등 여야의 협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심재철 의원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야간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국면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70%대로 다시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정치권 내에선 이번 사건으로 한국당이 일부 '국면 전환'을 이뤘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문 대통령과 대북 이슈로 집중되는 여론을 차단하는 데는 나름 성공했다는 것이다.
당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가 외교·안보, 비상근무 등 업무특성을 들어 심 의원의 의혹 제기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상황에서 소위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것이다. 심 의원이 18일 제기한 청와대 업무추진비의 단란주점 사용 의혹의 경우 휘발성은 컸지만 이미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당 차원에선 심 의원이 검찰 수사를 거부한 채 '야당 탄압' 이미지를 앞세울 경우 정작 고용부진, 부동산 혼선 등 현 정부에 대한 경제책임론만 퇴색될 수 있다. 이번 국감의 한국당 주요 타깃이자 대여 공격 핵심 소재다. 더구나 협치 파탄에 따른 정기국회 공전의 책임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당 한 관계자는 "청와대 업무추진비의 경우 깊이 들어갈수록 별 것 없다는 인상만 줄 수 있어 자칫 불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과 비핵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감안하면, 당장 효과적인 이슈가 별로 없다"고 털어놓았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쏟아지는 북한발 뉴스들에서 프레임을 전환하는 데는 일부 성공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현재까지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부정사용 등) 드러난 정도가 약해 대부분 국민들은 관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얼미터 권순정 조사분석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전후로 민심이 청와대에 이미 우호적으로 돌아선 상황"이라며 "(심재철 의원건이) 한국당 입장에선 보수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유리할 순 있지만 중도층 이탈 요인은 더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석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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