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일터에 '워라밸' 바람이 분 지 2년, 보험업계는 한술 더 떠 한달 휴가를 통 크게 보장하고 나섰다. 올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뒤 여름휴가철 시험대에 오른 장기휴가, 속 빈 강정은 아닌지 점검해 봤다.
적게는 이주에서 길게는 한 달의 장기휴가를 손에 쥔 보험맨들은 휴양지 헬스힐링으로 디스크를 고치는가 하면 홀로 배낭을 매고 유럽으로 떠났다. 넉넉한 휴가기간 덕분에 2차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도 소식을 전해왔다.
◆"필리핀 '깡촌'에 한 달이나 뭘 하러 왔느냐고? 들어는 봤나, 헬스힐링"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KB손해보험과 현대해상, 신한생명 등이 9일부터 30일까지의 장기 휴가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휴가 기간이 긴 만큼 휴가 목적도 단순 휴식에서 치료와 자아 찾기 등 깊고 다채로워졌다.
김정현(가명) KB손해보험 팀장은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8일까지 필리핀 불라칸 주의 작은 시골마을 산라파엘에서 '헬스힐링'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김 팀장은 15년간의 직장생활로 허리 디스크를 얻어 고생하던 차 지인이 소개한 헬스힐링에 마음이 동했다. 회사에서 한 달짜리 통큰 유급휴가를 준다는 소식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쌌다.
지압과 도수치료, 카이로프라틱(척추치료의 한 종류)을 받는 일정을 25일간 반복하자 디스크가 크게 호전됐다. 김 팀장은 "한국에서 같은 치료를 받으려면 하나당 10만원의 비용이 드는 데다 꾸준히 받기가 어려워 호전이 더뎠다"며 "하루 2만1천원가량을 지출하면 꼼꼼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척추 건강이 좋아졌고 일의 능률도 한층 올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로 2차 신혼여행을 떠난 황소영 현대해상 과장은 하계와 동계로 나뉜 휴가일정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달 짜리 휴가는 아니더라도 한해 9일간의 '休-9' 프로그램을 두 번 사용할 수 있어 남편과 일정을 맞추기도 수월했다.
황 과장은 "남편의 회사도 다행히 장기휴가를 보장하고 권하는 곳으로, 결혼 후 서로 번갈아 여행지를 추천해 자유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새로운 즐거움"이라며 "프랑스 여행도 느긋한 마음으로 자유여행을 꾸리다 보니 실수가 많았지만 돌아온 뒤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졌다"고 전했다.
취업 전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장기 유럽여행에 도전장을 낸 보험맨도 있다. 장현익(가명) 신한생명 전임은 2주 휴가제도를 접하고 배낭 하나를 달랑 매고 홀로 여행을 떠났다. 장 전임은 "휴가 기간이 길다 보니 방문했던 건축물과 음식, 미술작품 등을 빠짐없이 기억에 담아오게 됐다"고 회고했다.
◆직장인 여름휴가 평균 4.1일…7배 휴가에도 눈치주기 없다
올해 직장인들은 하계휴가로 평균 4.1일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10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집계해 발표한 2018년 하계휴가 실태조사 자료에서 전국 5인 이상 기업 585곳의 평균 하계휴가 일수는 4.1일이다. 한달 장기휴가를 다녀온다면 일반 직장인 휴가일수의 6~7배를 사용하는 셈이다.
직장인들은 자신에게 보장된 연차 휴가의 60%만을 사용했고, 이유로는 업무 과중과 상사·동료의 눈치보기를 골랐다.
직장인 익명보장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가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직장인 7천1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평균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9.2일로 총 연차 기간의 60%에 그쳤다. 연차를 쓰지 않은 원인 1위는 업무량(34%), 2위는 상사나 동료의 눈치가 보여서(30%)였다.
이렇듯 짧은 휴가를 쓰면서도 업무량에 치이고 동료의 눈치를 보는 게 직장인의 현주소다. 한달 휴가를 다녀온 보험맨들도 장기휴가를 선택하기까지 같은 걱정을 하지는 않았을까.
장 전임은 "유럽 여행 중 만난 한국인들에게 2주간의 휴가를 받았다고 하면 '어떻게 휴가를 2주나 쓸 수 있느냐'며 놀라 반문했다"며 "아직까지 장기휴가가 정착된 회사가 많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회사차원의 적극적인 홍보가 부담을 덜었다. 황 과장은 "휴가 문화가 정착되면서 업무분장 자체를 바꿔 업무별 실무자를 부서별, 항목별로 구분해뒀다"며 "장기간 휴가를 가더라도 업무 누수가 없기 때문에 속 편히 자리를 비웠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2022년까지 입사, 근무, 복직하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자기 개발 휴가로 항공료 200만원을 함께 지급해준다"며 "매년 말 부서별로 신청을 받아 연간 휴가계획을 설립하는 등 오래 전부터 준비해 운영에는 차질이 없다"고 전했다.
복귀 후에는 계단식 업무를 적용했다. 황 과장은 "업무 복귀 뒤 시차 적응 등의 생체 리듬변화 탓에 힘에 부칠 뿐 업무가 쌓여있지 않았다"며 "돌아온 날부터 차근히 일을 늘려 정상 복귀하는 계단식 업무 시스템을 밟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밖에 교보생명은 휴가를 간 직원이 시스템에 아예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가 하면 DB손해보험은 '9데이 리프레쉬(9일 휴가)'와 '1003반차(10시 출근 3시 퇴근)'로, 라이나생명은 '9.5제(9시 출근 5시 퇴근)'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한화생명은 '불금'마다 팀장급 이상 부서장들이 의무적으로 정시 퇴근하도록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 제도 도입 전부터 '노는 것도 확실히, 일도 확실히'가 보험업계의 트렌드"라며 "선진문화를 체험한 직원들이 업무 효율도 높아지리라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평했다.
허인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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