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트래픽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5세대통신(5G) 시대를 앞두고 망중립성 논란이 재가열되는 분위기다. 특히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이는 망을 각 서비스별로 나눠 쓸 수 있는 기술로 5G에서 필수 기술로 꼽힌다. 다만, 망사업자가 트래픽을 제어해야 된다는 점에서 기존 망중립성 원칙과 충돌할 여지가 있는 것. 별도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5G 등 4차산업혁명시대 이 같은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 망중립성 원칙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트래픽 관리에 효율적인 기술로 주목받고 있으나, 이를 활용하려면 현재 콘텐츠 업체의 망 접속이나 트래픽을 원칙적으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한 망중립성 원칙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란?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란 가상화를 이용해 물리적인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가령 4G까지는 사용자가 무선망에서 유선망으로 서버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일원화된 구조였다. 하지만 5G부터는 이 기술로 망을 여러개로 쪼개 각 서비스에 맞춰 전송이 이뤄질 수 있다.
단순하게는 PC의 하드디스크(HDD)를 소프트웨어를 통해 여러 파티션을 나누고, 사진, 영상, 텍스트, 프로그램별로 나눠 저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5G 시대 모든 사물이 무선 네트워크에 연결된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트래픽 분산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가령 자율주행차의 경우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 대용량 전송뿐만 아니라 끊김없는 저지연이 필수다. 반면 전기나 가스 검침기의 경우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지만 필요할 때 데이터를 주고받으면 된다. 각 서비스가 원하는 연결방식이 다른 셈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5G 인프라 구축에 있어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기술"이라며, "향후 5G 시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이동통신표준화기구에서도 이를 중요 표준으로 설정했다. 3GPP의 경우 지난 6월 발표한 5G 스탠드얼론(SA) 1차 표준에 이를 포함시켰다. 업계에 따르면 오는 9월 이에 따른 마이너 업데이트 버전이 나올 예정으로, 언제든지 상용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현재 기술 시연 및 검증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서는 지난 2015년부터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삼성전자와 노키아, 에릭슨과 함께 네트워크 슬라이싱 시연에 성공한 바 있다. 화웨이는 지난 3월 파트너사들과 함께 '5G 슬라이싱 협회'를 공동 창립키도 했다.
장비업체 관계자는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망효율성을 높일뿐만 아니라 통신사의 투자비용을 낮출 수 있다"며, "초광대역 주파수를 활용하는데 있어 이 기술을 제외한다는 것은, 5G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진배 없다"고 설명했다.
◆트래픽 제어 차원에서 망중립성 원칙과 '충돌'
문제는 이 기술이 망중립성 원칙에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국내에는 망중립성이 법제화되지는 않았으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사가 불합리적으로 트래픽을 차별화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각 서비스별로 트래픽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로 이른바 '합리적 차별'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 상태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시대 망중립성의 미래 정책토론회'에서도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망중립성 관련 쟁점이 됐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슬라이스별로 가격차별을 두고, CP들로부터 더 많은 접속료를 징수할 것"이라며, "망중립성을 폐기하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CP가 선택해 비용을 지불하게 하면 전반적으로 통신비 상승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보의 내용과 긴급성의 관계, 사업유형과 긴급성의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자율주행차나 의료용 서비스 등은 사업유형상 긴급할 수 있으나 이메일과 카카오톡 역시 내용에 따라 긴급성이 수반될 수 있다는 것. 이들은 이미 중립적인 망에서도 온전히 작동할 수 있으며, 망이 예측 가능한 형태로 제공되기 위해서도 기존 망중립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류용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규제개선팀장은 "서비스별로 품질도 다르고 비용도 다른데, 공급단가를 똑같이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미국처럼 망중립성을 폐지하기 보다는 망투명성이나 차단금지 등은 유지하면서 서비스별 차등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환 아주대 교수도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하는데 망중립성에 저촉되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다고 하지만 관리형 서비스는 망중립성에서 예외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가 트래픽을 차별화해 CP들로부터 더 많은 접속료를 징수할 것이라고 하지만, 통신사가 정한다기 보다는 시장 내에서 적절하게 통제돼 표준화된 요금체계가 정립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정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네트워크 슬라이싱의 경우 정부가 신기술 도입에 대해 막을 권리는 없다"면서도 "많은 것들이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여서 당장 결정할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당장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도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개선에 대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장비업체 관계자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가능하려면 우선적으로 코어망에서의 가상화가 완성돼야 하고, 그에 따른 무선장빙의 호환이 필요하다"며, "코어망의 가상화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신사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문기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