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5세대통신(5G) 등 4차산업혁명 시대 데이터 이용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존 망중립성 원칙 완화 등 변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이의 폐기를 결정하면서 국내에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
그러나 인터넷 생태계 구축 차원에서 이를 쉽게 폐기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 와중에 콘텐츠 업체(CP)가 망 사업자와 제휴, 이용자의 망 사용료를 대신 부담하는 '제로레이팅'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 역시도 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독과점 및 영세한 CP 차별 등 주장이 맞붙는 형국이다. 현재 정부는 망중립성 원칙과 제로레이팅에 대해 법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가이드라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변화의 여지는 있는 상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용현 의원(바른미래당) 주최로 19일 열린 '4차산업혁명시대 망중립성의 미래 정책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5G 시대 망중립성 원칙과 제로레이팅의 적용방안 등에 대한 열띤 논쟁이 이어졌다.
특히 망중립성 변화의 대안으로 제로레이팅에 논의가 모아진 가운데 이의 도입 여부와 제공 형태를 놓고는 여전히 주장이 엇갈렸다.
사업자 경쟁을 통해 통신비 인하에 일조할 수 있어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통신사가 망사업자로서 누리고 있는 시장 독과점 상황이 콘텐츠 시장에 전이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 망중립성 변화 고민 … "제로레이팅이 대안"
발제자로 나선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로레이팅은 망중립성 위반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망중립성 현안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망중립성은 망사업자가 콘텐츠 등 사용자의 네트워크 접속 및 이용을 차별하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원칙이 통용됐지만 ICT가 급격하게 발전한 현재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망중립성은 인터넷 트래픽의 부당한 차단, 차별이 있을 때 위반 여부를 물을 수 있고, 제로레이팅은 요금제일뿐 이통사업(MNO)의 트래픽 처리와는 무관하다는 것. MNO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간 상호 거래 유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망 이용대가 정산을 유도하는 차원으로 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성환 교수는 "전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곳은 인터넷 기업이며, 이같은 공룡기업들을 망중립성 원칙에 명시된 개별 이용자라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며, "과거 데이터 트래픽 흐름은 대칭적이었으나, 현재는 동영상 등 트래픽이 상당히 많은 데이터가 일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비대칭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제로레이팅은 이같은 불균형적인 상황을 균형감있게 가져갈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제로레이팅이 배타적 거래나 차별적 조건에서 이뤄지더라도 경제 이론적으로 효율성 효과를 가질 수 있어 그 자체로는 위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히려 제로레이팅의 활성화로 CP에게는 합리적인 망 이용대가 기준이 마련되는 한편, 이용자는 망이용료를 내지 않아 통신비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망사업자는 망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어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김명수 강원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평소 지불의향이 낮아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던 이용자에도 기회를 제공해 소비자 후생 증대 효과가 있다"며, "산업적 측면에서도 포털과 CP 등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 성장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제로레이팅에 대해 사전규제의 관점에서 사안별 접근하던 입장을 선회, 이용자 편익을 위해 사실상 '완전 허용'을 선언했다.
또 유럽연합(EU) 규제기관인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도 이용자의 권리가 제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로레이팅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특히 망사업자가 자사 또는 계열사 제로레이팅을 도입하는 경우도 사전이 아닌 사후규제를 통해 부당한 차별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 예로 SK텔레콤이 자사 계열의 11번가를 이용하는 가입자에대해 데이터를 무료 제공한 것을 들었다.
김 교수는 "표면적으로 무료 제공으로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데이터 처리 비용을 통신사가 대신 지불하는 형태"라며 "즉, 이통사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이용자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용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규제개선팀장도 "해외 사례를 보면 통신사와 중소CP를 배제하기 보다는 오히려 제휴가 활발하게 확대된 바 있다"며, "이용자 중심에서 제로레이팅을 기본 허용하고, 불공정행위가 발생하면 사후규제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망사업자 자사 제로레이팅은 사전금지해야"
반면 망 사업자 계열의 CP에 대한 제로레이팅이 중소 CP 등을 차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사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았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은 "통신사가 CP와 이용자에게 동시에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음에도 제로레이팅까지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차 실장은 "제로레이팅 도입으로 중소업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CP가 도대체 무슨 비용으로 (제로레이팅과 같은) 패스트레인(Fast Lane)을 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발제자로 나선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 같은 망 사업자의 계열간 제로레이팅을 문제 삼았다.
박경신 교수는 "일반적인 제로레이팅은 마치 영화배급사에서 영화 보급을 위해 공짜표를 주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통용돼야한다고 보고 있으나 망사업자의 경우 이미 망사업 내 독과점 상황이며, 자사 제로레이팅을 허용하면 시장 지배력의 전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윤압착' 가능성을 근거로 자사/계열 제로레이팅이 사전적으로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A'라는 그룹내 'a'라는 망사업자가 있고 계열사 중 'b'라는 CP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a가 b와 계약을 체결할 때 망이용료를 비싸게 책정해 받을 수 있다는 것. 문제는 타 CP와 거래할 때도 b와 맺었던 계약 내용을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 이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CP는 고사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교수는 "독립 사업자와 하는 제로레이팅은 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사 제로레이팅은 독점규제법상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규제가 안된다면, 사후규제로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특정 CP를 배제시킨다는 게 아니라 자사 콘텐츠 사업자에 부당한 지원을 해줌으로써 다른 CP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을 축소시키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정부 신중론 …"논의 부터 활성화"
정부는 제로레이팅뿐만 아니라 망중립성 논쟁에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당장은 망중립성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제로레이팅의 경우도 법적으로 이를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망중립성 위반 논란 등이 불거질 수 있어 이의 활성화를 적극 유도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김정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망중립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판단하기보다는 일단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망 투자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도로가 없으면 차량이 이동할 수 없듯 망사업자의 투자 활성화를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는 건. 반면 인터넷 생태계 위기를 고려해야 하고, 글로벌이나 국내, 또는 중소 CP들에게 끼치는 영향 등도 면밀하게 점검해야 할 단계라는 얘기다.
김 과장은 "많은 것들이 얽혀 있어 짧은 기간에 전문가들의 난상토론으로 바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제로레이팅에 대해서는 "사후규제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 지난 2월부터 인터넷상생협의체를 운영하며 다양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망중립성도 이에 해당된다.
곽진희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방통위는 2011년, 2013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이후 트래픽 관리 기준과 망 투명성 기준을 만들고 있으며, 법제화하지는 않았다"며, "이통3사가 이를 약관에 반영했으며, 약관에 따른 사후규제는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2016년 전기통신사업법 금지행위에 일부 포함시켜, 서비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시 이를 제재하는 시행령과 부당성 기준은 고시했다"고 덧붙였다.
방통위는 협의체를 통해 연말까지 의견을 모으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신용현 의원은 "섣불리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 사례가 나올때까지 기다릴 상황은 아니다"라며, "향후에도 이런 자리가 많이 마련된다면, 서로를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마무리했다.
김문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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