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2011년 7월 1일 0시.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는 시간이다. 국내 첫 4세대통신(4G) 롱텀에볼루션(LTE)이 시작된 때다. 이 때부터 한국은 글로벌 이통동신 테스트베드 중심에 서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한국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열띤 논의를 벌이기도 했다.
◆ 4G 핵심표준으로 LTE 부상
롱텀에볼루션(LTE, Long Term Evolution)을 직역하면 오랜 기간 동안의 진화다. 통신 규격으로 쓰기에는 엉뚱한 문구지만 3세대(3G) 통신에서 4세대(4G)로 진입하는 기간 또는 WCDMA에서 LTE까지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적당한 명칭이다.
LTE에 앞서 3G를 살펴봐야 한다. 3G는 크게 미국식 CDMA와 유럽식 GSM(WCDMA)로 구분된다. 당시까지만해도 SK텔레콤과 KT가 서비스하는 방식은 WCDMA였으며, LG유플러스는 미국식 CDMA를 기반으로 했다.
WCDMA는 지속적으로 HSPDA, HSUPA, HSPA, HSPA+ 등의 규격 진화를 이루면서 속도를 높여왔다. CDMA는 리비전(Rev).A와 리비전.B 등으로 발전하면서 속도를 키웠다.
LTE는 WCDMA와 맥을 함께 한다. 이 때문에 기존 3G망과의 연동이 탁월하다. 연동이 쉽다는 것은 그만큼 망투자 비용을 줄이면서도 서비스 지역을 늘릴 수 있어 효율적인 확산이 가능하다.
현재는 4G와 LTE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으나, 당시에 LTE는 4G 후보군 중 하나였다. 국내서는 와이브로를 4G 기술표준으로 민 바 있다. 이밖에도 울트라모바일브로드밴드(UMB)가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이 중에서 LTE가 4G의 대표적인 표준으로 부상한데는 기존 3G의 과반을 WCDMA가 차지하고 있어서였다. 당시 장비업체인 노키아를 중심으로 유럽기업들이 뭉쳐 LTE를 밀었다. UMB라는 독자 규격을 개발하고 있던 퀄컴이 이를 포기하고 LTE로 선회하면서, 기세가 더 등등해졌다. 와이브로의 경우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기업들이 힘을 합쳤으나 열세를 이기지 못했다.
LTE가 첫 상용화된 때는 2009년 12월 14일이다. 유럽 이통사인 텔리아소네라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삼성전자의 통신모뎀과 라우터를 통해 달성이 가능했다. 이후 미국 이통사 AT&T와 버라이즌, 일본 NTT도코모와 유럽 보다폰 등이 LTE 도입 추진을 서둘렀다.
◆ 초기 LTE 속도 논란
국내서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2011년 7월 1일 LTE 상용화를 알렸다. SK텔레콤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LG유플러스는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주요 도시를 초기 거점으로 삼았다. 후발주자였던 LG유플러스는 발빠른 전국망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LTE 속도는 하향 최대 75Mbps의 속도였다. 기존 HSDPA의 14.4Mbps에 비해 5배 이상 빠른 속도다. 1.4GB 영화 1편 다운로드시 2분, 400MB MP3 100곡을 40초면 다운로드 할 수 있다. 기존 3G망을 활용했을 때는 각각 15분, 5분이 소요된다.
3G 대비 빠른 속도를 보여주는 LTE였으나, 당시에는 LTE가 요구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엄밀히 말하면 LTE가 아니라는 것.
이에 대한 근거는 지난 2008년 국제 전기통신 연합(ITU)이 4세대 이동통신 규격을 고정 시 1Gbps, 고속 이동 시 100M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5G 초기에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네트워크 서비스를 LTE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LTE-어드밴스드(Advanced)가 이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주파수 자원의 제한이 없다면 충분히 이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다.
또한 ITU는 지난 2010년 12월 9일 4G 용어의 개념을 확장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혀 규정한 속도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4G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LTE뿐만 아니라 와이맥스(WiMax), 3G HSPA+까지도 4G라 부를 수 있게 됐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규정 속도 논란이 있었으나 실제 시장에서는 이보다 단말이 더 큰 문제였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LTE 전용 스마트폰이 아닌 모뎀과 라우터만을 지원했다. 2011년 9월 28일에서야 국내 첫 LTE 스마트폰이 출시됐다.
◆ 주파수 따라 LTE 초기 경쟁력 '출렁'
LTE 도입을 위해 이통3사는 가용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G 서비스만을 운용하고 있던 LG유플러스는 이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업자였다. 2G 종료 없이도 충분히 LTE를 운용할 수 있었다.
LG유플러스는 1.8GHz 주파수에서 2G를 유지하고, 800MHz 주파수 20MHz 대역폭에서 LTE를 상용화했다. 상하향 각각 10MHz 대역폭을 서비스할 수 있었던 LG유플러스는 이같은 장점을 십분 활용해 '진짜 LTE'를 표방했다.
SK텔레콤은 800MHz 주파수 30MHz 대역폭에서 2G 서비스를 운용 중이었다. 이 중에서 LTE를 위해 10MHz 대역폭을 가져왔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 속도면에서는 LG유플러스에 뒤쳐졌다.
SK텔레콤은 10월이 되서야 800MHz 주파수 2G 대역중 10MHz를 추가로 가져와 20MHz 대역폭에서 LTE를 서비스할 수 있게 되면서 LG유플러스와 동등한 조건으로 올라섰다.
문제는 KT였다. KT는 LTE를 상용화할 수 있는 주파수가 없었다. 1.8GHz 주파수의 2G를 종료하고 이곳에 LTE를 이식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2G를 사용하고 있는 이용자가 많았기에 현실적인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2G 사용자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고, KT의 LTE 도입이 늦은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KT는 타사 LTE에 대항하기 위해 3G와 와이브로, 와이파이를 앞세운 3W 전략으로 방어하는 한편, 2G 사용자 설득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법정까지 이어진 2G 사용자와의 갈등에서 결국 사용자가 승리하면서 LTE 상용화가 더 멀어지기도 했다.
KT는 2G 가입자에 대한 끈질긴 설득으로 2G 사용자 종료 수준까지 이용자를 끌어내리면서 2G 종료 승인을 받기에 이르렀다. 업계에서는 KT 직원이 직접 2G 사용자를 찾아가 설득하는 등 엄청난 노력이 수반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확보된 주파수가 없어 고생길을 걸은 KT는 2012년 1월 3일 LTE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연재]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카폰·삐삐, '모바일'을 깨우다 2부. 이통 5강 구도 'CDMA·PCS'의 시작 3부. 이통경쟁구도 '5→3강' 고착화 4부. 'IMT2000' 이동통신 '음성→데이터' 전환 5부. 도움닫기 3G 시대 개막, 비운의 '위피' 6부. 아이폰 쇼크, 국내 이통판을 뒤엎다7부. 3G 폰삼국지 '갤럭시·옵티머스· 베가'김문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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