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윤지혜 기자] '제3자 뇌물죄' 혐의를 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과 검찰이 항소심 첫 공판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신동빈 회장은 직접 "면세점 부정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검찰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현안에 대해 명시적으로 청탁함으로써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강하게 맞섰다.
구속된 지 106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신동빈 회장은 30일 오전 10시 10분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해 시작에 앞서 직접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면세점'과 관련해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신동빈 회장은 "국민 여러분과 롯데그룹 임직원들에게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기부금을 낸 것으로 심사에서 탈락한 면세점 사업권을 (다시) 받게 됐다는 검찰 측 주장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문제로 여러 소란과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롯데와 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사과하고 조금이나마 개선해보고자 만난 자리에서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을 위해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다소 적절치 않은 처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당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아주 깨끗하고 고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분에게 청탁을 한다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위한 선수 육성을 위해 재단에 지원금을 낸 것을 두고 이렇게 비난 받고 법정구속까지 돼 당혹스럽지만 이번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신동빈 회장은 사복을 입은 채 다소 야윈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앞서 신 회장은 최순실 씨가 주도한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으며, 지난 2월 13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이번 공판은 신동빈 회장 변호인 측 요청에 따라 국정농단 사건과 기존 경영비리 사건이 병합되면서 치러진 첫 번째 공판으로, 이날은 '면세점 부정청탁' 여부를 두고 검찰과 신 회장 측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재판부는 이날부터 6월 4, 11, 20, 25일은 '면세점 뇌물공여' 건으로, 7월 4, 11, 18일은 '경영비리' 건으로 재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7월 말 법원 휴정기를 지나 8월 중순쯤 재판을 마무리한 후 9월 말~10월 초 선고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에서 신동빈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하는 자리에서 '기업현안인 면세점에 대한 청탁을 했는지' 여부와 '그 대가로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송금한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이날 재판에서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은 1심에서 롯데가 케이스포츠재단에 건넸다 돌려받은 70억원이 '청탁의 대가'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특히 케이스포츠 및 미르재단에 출연금을 기부한 대부분 기업들이 정부의 겁박에 못 이겨 돈을 건넸고, 이에 대해서는 법원도 "강압에 못 이겨 출연한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은 "이번 사건은 뇌물사건이 아니라 검찰에서 얘기하는 대로 그동안의 정부 관행에 따라 강요된 준조세성 출연으로 보인다"며 "검찰도 처음엔 이 같은 판단을 하고서도 안종범의 진술을 매개로 삼성과 함께 신 회장을 끌어들여 뇌물죄로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종범의 진술은 믿기 어려울 뿐더러 원심에서도 충분한 심리를 거치지 않고 검찰 측이 주장하는 면세점 면허 취득 부분만을 좀 더 고려해 유죄로 예단한 듯 하다"며 "원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미르 및 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물론, 정부 요구에 따라 준조세를 낸 어떤 기업도 뇌물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신동빈 회장 측이 국내 대기업이 하는 후원활동을 준조세활동으로 명명하고, 세금처럼 강제 납부를 한 것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잘못을 대통령과 검찰에만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 유감스럽다"며 "70억원 지원은 출연금이 아닌 특정 재단에 사업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이렇게 한 것은 기업 총수 중 신 회장이 유일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어떤 주장도 서슴치 않으면서 책임을 면하려는 신동빈 회장에게 죄의 상향을 요청하며 항소 이유를 개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검찰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강조했던 신동빈 회장 측이 다른 기업의 공익활동을 모두 준조세라고 말하고, 롯데 후원금도 자발적인 게 아닌 세금처럼 정부 강요에 따라 강제로 한 것이라고 고백한 것은 충격적"이라며 "우리는 순수 공익활동을 뇌물죄로 기소한 것이 아닌, 현안인 면세점 특허와 재단 출연금을 바꿔먹은 행위를 두고 기소한 것"이라고 강하게 맞섰다.
더불어 검찰은 롯데그룹을 수사하게 된 것은 재단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70억원 자금이 요구되고 반환된 경위와 독대 직후 자금이 지원된 경위를 롯데 측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태도 등을 보고 뇌물죄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롯데의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은 신동빈 회장의 주도 아래 롯데가 안종범 전 수석, 여러 의원들을 관리하며 독대 당시 해결 받은 현안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신동빈 회장 측은 면세점 선정절차는 재단지원과 전혀 별개로 진행된 것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후 특허권을 재취득했기 때문에 재단 출연금을 추가로 낸 것을 두고 면세점 대가라고 인식한 것은 작위적인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이 (출연금을) 요청한 전후 상황을 보더라도 대가성이 있는 지가 의문"이라며 "면담 이후 9월로 예정됐던 면세사업자 선정은 12월로 미뤄져 롯데에 불리했을 뿐더러 추가 출연 후 면세점 수가 많다고 (박 전 대통령이) 재검토 지시를 내려 사업 환경이 더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심은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이 롯데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현안이라고 판단했지만, 당시 롯데그룹은 면세점 외 더 많은 현안이 있어 사업 비중을 놓고 봤을 때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며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 월드타워 면세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본 원심 판단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초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보면 면세점 월드타워점의 가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월드타워점 특허 재취득이 '중요한 사안'인 것은 분명하지만 호텔롯데 상장은 해당 면세점의 가치평가(밸류에이션)를 제외하고서도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에 "뇌물을 주면서까지 부정한 청탁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변호인측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또 신동빈 회장 측은 검찰이 명시적 청탁으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신 회장이 면담 시 '현재 세계 3위인 면세점을 세계 1위로 만들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한 부분을 두고 검찰이 명시적 청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의 경과를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며 "당시 해외 면세업체를 인수해 세계 1위를 달성하려고 한 상황인데 검찰 수사 때문에 중단됐고,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을 통해 세계 1등을 목표로 한다고 판단한 검찰 측 주장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에서 주장하는 명시적 청탁 여부보다 묵시적 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출 것임을 암시했다. 또 재단 출연금 70억원을 6개 롯데계열사에서 추징해 그룹에서 받은 만큼, 이와 관련해 신 회장에게 법리적 책임을 묻는 것에 문제가 없는 지도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공통적으로 '대가성'에 대한 인식이나 양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 판단하면 될 것 같다"며 "독대 자리만 두고 묵시적 청탁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전후 모든 사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이 대가를 바랬는 지에 대해 검찰이 너무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부정청탁과 공익목적 비중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좀 더 고민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기자 [email protected] 윤지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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