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인텔과 AMD가 올해 '밀당(밀고당기기, 미묘한 심리싸움이라는 뜻의 신조어)'의 고수로 등극했다. 이러한 행보는 부진한 PC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일조했다. 서로 경쟁을 벌이다 때로는 공적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잡기도 했다. 두 업체에게는 엎치락 뒤치락 다사다난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 초 까지만해도 인텔은 PC CPU 시장에서 90% 안팎의 절대적 점유율을 보였다. 하지만 AMD가 차세대 프로세서인 라이젠을 통해 추격을 시작, 지난 2분기 한자릿수에 불과했던 점유율을 31%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선의의 경쟁을 펼친 두 업체는 내년초 합작품을 내놓는다. PC시장 부흥기를 이끌었던 두 업체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손을 잡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경쟁은 계속된다.
◆ 권토중래 AMD 라이젠, 인텔의 파편화 대응
AMD는 사업 규모 및 매출 측면에서 인텔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흔히 다윗과 골리앗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AMD가 호기롭게 내놓은 라이젠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뒤집지는 못했지만, 분위기 반전은 이뤘다.
AMD는 인텔이 PC 시장에서 독주할 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로 부상했다. 지난 10년간 인텔의 발밑에서 지지부진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업계에서 지금까지 AMD의 부진의 원인으로 크게 2가지를 꼽고 있다. 인텔 대비 1~2세대 뒤쳐진 제품력과 그간 손상된 브랜드 이미지를 지적한다.
인텔은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미세공정화에 성공했지만, AMD는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다. 인텔이 45나노 공정을 도입했을 때 AMD는 65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해 인텔이 14나노 핀펫 공정의 7세대 프로세서를 공개했을때도 AMD는 28나노 공정에 무려 6년동안 메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통상적으로 미세공정화할 수록 칩의 면적과 성능, 전력효율, 원가절감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텔 제품군 대비 낮은 성능과 높은 발열량은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새로운 프로세서를 내놓을 때마다 보여줬던 자신감은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1년 출시한 코드명 불도저 프로세서는 높은 발열 대비 낮은 성능으로 사용자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2가지 부정적 시각을 되돌리기에 충분한 라이젠 프로세서가 시장에 출시됐기 때문이다.
AMD는 인텔의 미세공정을 따라잡기 위해 여러 파운드리 업체와 손잡았다. 글로벌파운드리, 삼성전자 등과 협력을 통해 14나노 공정에 진입했다. 공정만큼은 인텔과 동등한 길을 걷게 됐다. 이를 위해 AMD는 약 4년간 새로운 아키텍처 개발에 매달렸다.
후발주자로서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펼쳤다. 인텔 코어 프로세서와 비슷한 성능을 보이면서도, 가격은 절반으로 책정했다.
우선 상위 프로세서인 라이젠7이 지난 3월 2일 출시됐다. 당시 인텔 코어 'i7-6900K'의 경우 약 1050달러(약 120만원) 수준이었지만, '라이젠7 1800X'는 63만9천원으로 절반 가량 저렴했다. 뒤 이어 메인스트림급 '라이젠5'가 4월 출시됐다. 7월에는 보급형 '라이젠3'를 출시했다.
포트폴리오 확장에도 공을 들였다. 16코어 32스레드를 지원하는 '라이젠 쓰레드리퍼'를 통해 하이엔드데스크톱프로세서 시장을 정조준했다. 기업용 PC시장을 위해서는 '라이젠 프로'를 선보였다. 서버 시장은 최대 32개의 고성능 젠 코어로 구성된 '에픽 프로세서'를 내놨다.
AMD의 파상공세에 인텔도 새로운 브랜드 신설 및 로드맵 일정을 앞당기는 등 적극적으로 진열을 재정비했다.
우선 새로운 프로세서 브랜드인 'X시리즈'를 신설했다. 4코어에서 18코어까지 늘릴 수 있는 확장성이 특징이다. 인텔이 서버용 '제온'이 아닌 일반 코어 프로세서에서 코어수를 급격하게 늘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상급인 '코어i9 익스트림 에디션'의 경우 18개 코어와 36개 스레드를 갖췄다.
내년초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8세대 프로세서 출시를 올 3분기로 앞당겼다. 14나노 공정 기반의 'i7'과 'i5 코어 프로세서'로 저전력을 구현해 노트북에 주로 탑재되는 'U 시리즈'가 먼저 출시됐다. 나머지 10나노 기반 프로세서는 내년초부터 순차적으로 출시된다.
◆ 위기상황 '인텔-AMD' 협력…그러나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PC 및 기업, 서버 CPU 시장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인텔과 AMD는 이례적으로 내년 1분기를 겨냥한 PC 프로세서 생산을 위해 손을 잡았다. 정확하게는 인텔의 프로세서에 AMD가 GPU를 납품하는 형태지만, 그간의 갈등 양상에서 협력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AMD는 올해 5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4세대 그래픽 아키텍처인 '베가'를 공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데스크톱용 그래픽 카드를 출시했다. 베가 GPU는 차세대 메모리 서브시스템을 탑재해 다수의 메모리에 분산돼 있는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고대역폭 캐시 컨트롤러를 통해 온패키지 캐시와 오프패키지 메모리에 유연하게 접근한다.
AMD의 베가 GPU는 인텔의 제조 공정에 맞게 세미 커스텀돼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인텔은 8세대 코어 프로세서 중 코드명 '커피레이크'로 불리는 'H 시리즈'와 'S 시리즈'를 내년 1분기에 내놓을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이 중 'H 시리즈'가 AMD의 GPU가 포함되는 프로세서 패키지다. H는 인텔이 사용한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 기술을 강조한 이기종(Heterogeneous)에서 따온 듯 하다.
인텔 8세대 'H 시리즈' 코어 프로세서는 EMIB를 이용해 인텔의 코어칩과 AMD의 GPU, HBM2 메모리를 연결해준다. 이러한 시스템인패키지 방식을 통해 기존 메인보드 크기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전력효율의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 즉, 그간 두껍고 무거웠던 게이밍 노트북의 휴대성이 크게 상승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워커 인텔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 부사장 및 모바일 클라이언트 플랫폼 총괄 매니저는 "8세대 일부 새로운 제품이 될 고성능 인텔 코어 H 시리즈 프로세서는 2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와 인텔칩, AMD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의 칩을 단일 프로세서 패키지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스콧 허켈만 AMD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 부사장 겸 총괄 책임자는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AMD 라데온 GPU의 설치 기반을 넓히고 고성능 그래픽을 위한 차별화된 솔루션을 시장에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과거 영광을 누리던 인텔 x86 진영에 대항하는 ARM 진영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 든든한 동맹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ARM, 퀄컴과 손잡고 영역 넓히기에 나섰다. 올해 퀄컴의 '스냅드래곤835' 기반 윈도10 시연은 인텔에게 위협적인 요소였다. ARM이 그간 넘보기 어려웠던 x86 기반의 운영체제까지 섭렵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뿐만 아니라 엔터프라이즈까지 넓어질 수 있다. 실제로 퀄컴은 ARM 기반의 서버용 프로세서 양산을 시작했다.
5G 시대와 자율주행차량 시장이 성큼 다가오면서 이러한 위기의식은 더욱 팽배해졌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시장에 대응하는 한편, 자율주행차량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퀄컴 또한 NXP 인수에 나서면서 전장사업으로의 확장에 나섰다. AMD의 GPU를 가져온다는 것은 단순히 PC 시장만을 위한 일보 전진이 아니라 전방위적인 견제를 벗어나기 위한 발판 마련에 가깝다.
물론, 인텔과 AMD의 밀당이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인텔은 AMD와의 협력을 발표하자 마자 AMD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을 이끌었던 라자 코두리 수석 부사장을 영입했다고 밝혔다. 라자 코두리 부사장은 AMD에서 베가 아키텍처 개발을 이끌었던 GPU 전문가다. 인텔은 라자 코두리를 새로 설립된 코어 및 비주얼 컴퓨팅 그룹 선임 부사장 자리에 앉혔다.
김문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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