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삼성 총괄을 맡아온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공표했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하고는 있으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전자는 13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겸직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저의 사퇴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한순간 방심하면 도태, 中 맹추격 "따라잡힐라"
삼성전자는 13일 올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14조5천억원이다.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전분기 대비 3.06% 올랐다. 전년동기대비 178.85% 상승한 결과다.
호실적은 반도체 사업의 훈풍에 따른 영향이 크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부문에서 거둬들인 영업이익은 약 10조원 수준이다. 전체 영업이익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규모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약 1조원, IM부문은 약 3조원대로 예상된다. 갤럭시노트8의 마케팅 비용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했지만 4분기 반등을 노릴 수 있다. CE부문이 4천억원 정도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의 높은 반도체 영업실적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호황과 점차 규모가 넓어지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잠재력을 등에 업은 결과다. 전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AP와 이미지센서 등 비메모리 반도체도 성장세다. 올해 파운드리 사업부를 독립시켜 경영효율성과 경쟁력 강화에도 나선 상태다.
이 같은 훈풍에 돛을 달아준 주역으로 권 부회장이 꼽힌다. 권 부회장은 1952년 생으로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에서 각각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후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전기공학 박사를 취득한 반도체 전문가다. 1997년 한국잔자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해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하며 삼성과 연을 맺었다.
권 부회장은 1987년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문에서 4MB D램을, 1992년에는 64M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권 부회장은 1997년 삼성전자 시스템LSI본부로 자리를 옮긴 후 2011년 삼성전자 DS부문을 총괄하는 사장자리에 올랐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 대표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를 겸임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았다.
하지만 권 부회장이 사퇴하게 됨에 따라 사업 전략의 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사업의 경우 최소 3년전부터 차기 전략과 투자 계획을 세워 놓아야 한다. 이렇게 생산된 전자부품들 또한 셋트업체의 요구에 따라 1~2년 전부터 공급전략이 마련된다”라며 그간 부품 사업을 총괄해온 권 부회장이 떠나게 된다면, 그에 따른 사업전략 및 경영에 대한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분석했다.
외부적으로는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중국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 규모 성장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총 1조위안(한화 약 171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 반도체 설비투자금액으로 전년대비 68% 오른 115억달러(한화 약 13조원)를 달성할 전망이다. 2위인 대만을 제치고 1위인 한국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9인치 이상 대형 LCD 패널 출하량 기준으로 중국 BOE가 1위를 차지했다. 아울러 중국은 OLED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 구심점 잃을 위기 처한 삼성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퇴를 결심하기는 했으나 내부적인 절차가 모두 완료돼야 비로소 자리에서 물어날 수 있다. 이사회 의결뿐만 아니라 후임자도 물색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후임자도 내부 선임 절차를 밟는다.
권 부회장은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임자 선임 이전까지 경영 전반을 그대로 맡아 수행한다. 대신 임기가 만료되는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은 내년 3월까지만 수행하고 연임치 않기로 했다.
삼성은 오너리스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1심 선고를 통해 징역 5년형을 구형받은 상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와병 이후 삼성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해 뉴삼성 구축에 힘을 쏟은 바 있다.
이 부회장은 1심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뿐만 아니라 특검도 항소에 나섰다. 지난 12일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 상태다. 항소로 인해 이 부회장은 내년 2월 27일까지 구속 상태가 유지된다. 2심 최대 구속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이다.
특검법에서는 1심 선고일로부터 2개월 이내 2심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권고사항일뿐이라 실제적으로는 내년 구속만료일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1심 공판이 4월 7일 시작돼 8월 25일 선고가 이뤄지는 등 약 5개월의 기간이 소요된 점을 감안했을 때 2심의 심리 또한 길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재판부가 빠른 속도로 공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혀 2심 선고가 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이후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전문경영인과 이사회를 통한 자율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이 필요할 때마다 곤혹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 임원 인사 및 조직개편도 뒤로 밀렸다. 신규 채용과 투자 등의 경영계획 수립도 지연됐다.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남아있던 권 부회장에게로 업무가 과중되는 형태로 전이됐다.
실제로 권 부회장은 여러 자리에서 삼성의 대표로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업인 간담회에서도 미국 순방 때도 권 부회장이 함께 했다. 공정거래위원장과의 4대그룹 간 정책간담회에도 참여하는 등 대관업무까지 도맡게 됐다.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자 임직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직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당시 권 부회장은 "경영진도 참담한 심경"이라며, "회사가 처해 있는 대내외 경영환경은 우리가 충격과 당혹감에 빠져 있기에는 너무나 엄혹하다. 저희 경영진도 비상한 각오로 위기를 극복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당부했다.
공교롭게도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와 의장직이 만료되는 시기가 내년 3월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만료일과 맞물리는 시점이다. 이 부회장이 항소를 통해 무죄 입증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지 않는다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문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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