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채나기자]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흩어져 살던 가족, 친지들이 고향집 밥상에 둘러앉으면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오간다. 올해는 연휴가 최장 10일(9월 30일~10월 9일)에 달해 어느 명절 보다 풍성한 이야기꽃이 피어날 전망이다.
정치도 추석 밥상에 자주 오르는 단골 이슈다. 과거에는 명절이 민심 확산 통로였다면,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성화된 이후로는 평소 SNS를 통해 형성된 민심이 명절 밥상에서 열띤 토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北 잇단 도발, 전쟁 가능성?
올해 추석 밥상의 핵심 이슈는 안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포함, 총 11차례의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우리 정부가 제재와 압박을 강조한데다, 북미 간 '선전포고'까지 운운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각에서 전쟁 우려까지 불거진 상태다.
영국 왕립국방연구소의 말콤 챌머스 교수는 최근 "북미 전쟁은 현실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의 기습 공격이 있다고 오판해 괌이나 미국 서해안까지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이 대응 공격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이 과정에서 수십만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자 SNS를 중심으로 전투식량, 침낭, 방독면, 라디오, 나침반, 핫팩, 맥가이버칼 등 15개 비상물품이 들어있는 '전쟁 가방' 소개 영상이 급속 확산되는가 하면, 서울 소재 한 회사에서는 이 '전쟁 가방'을 추석 선물로 지급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푸어스(S&P)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낮다면서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과 전망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동아시아 순방에 나설 예정인 점도 한반도 전쟁 임박설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분석이다.
◆전술핵, 자체 핵무장 가능할까?
안보 정국 속 또 하나의 이슈로 떠오른 게 핵무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보수 야당이 주도하고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전술핵 재배치, 독자적 핵개발 등 핵무장을 통해 남북 간 핵균형을 맞추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핵확산방지조약(NPT) 위반이다. NPT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핵무기를 갖는 것과 핵무기 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약으로 우리나라는 1975년에 가입했다.
1992년 남북한이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위배된다. 물론 북한은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NPT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모두 위반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마저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북한에 핵실험 중단을 요구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의 경우 미국이 부정적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미국을 방문해 국무부, 의회 관계자 등에게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설파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첫 명절, '문재인표 국정운영' 평가는?
올해 추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명절이다. 출범 5개월째를 맞은 문재인 정부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추석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 친지들은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을 신랄하게 평가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다. 지지율이 60% 중후반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팬층'도 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등산복, 안경, 자서전, 우표 등 이른바 '이니 굿즈'는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청와대 행사에 초청된 손님 등에 선물로 증정되는 시계, 찻잔은 판매 요구가 빗발친다.
다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하락세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갤럽이 26~28일 전국 성인남녀 1천6명을 대상으로 실시, 29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5%였다. 이는 같은 기관 여론조사 기준 취임 후 최저치다.
여기에는 북핵 대응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안보 위기에 따른 국민 불안이 고조되면서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된 것이다.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조각 인선을 둘러싼 잡음도 문 대통령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박근혜·이명박·노무현, 전직 대통령 밥상에 오른다
문 대통령 못지않게 박근혜·이명박·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거론될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장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청와대, 국정원 등을 동원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도 재점화됐다.
박 전 대통령은 현재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논란거리는 1심 구속 만기가 추석 연휴 직후인 16일로 바짝 다가왔다는 점이다. 검찰은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재판부에 공식 요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구속 만기는 최대 6개월 더 연장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최근 병원 진료 기록을 떼 간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불구속 재판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군사이버사령부 등의 선거 개입, 청와대 출신 19대 총선 출마자 지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야권 인사 사찰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여권은 적폐청산을 외치며 관련 사건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고, 자유한국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정치권 전체가 논란에 휘말린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도 되살아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심이 이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자,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씨는 가출을 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재단은 정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추석 민심, 내년 지방선거 가늠자
올해 추석 민심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 가늠자로 여겨진다. 이번 지방선거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치러지는 첫 번째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판가름할 중대 분수령이다.
여권 입장에서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경우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게 된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당으로서는 지방선거를 존재감 부각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여야는 추석 민심을 의식해 연휴 전인 29일 일제히 귀성인사를 하고 각 당의 특색을 담은 정책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용산역에서 텃밭으로 향하는 호남 민심을, 자유한국당은 서울역에서 경부선 민심에 호소했다. 최근 전국을 돌며 제3당 입지 굳히기에 나선 국민의당은 서울역과 용산역을 동시에 공략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60% 후반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만큼 현재까지는 여권이 우세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선거일까지 8개월여의 시간이 남은 데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등 변수가 많아 민심의 향배를 단언할 수는 없다.
윤채나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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