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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 문재인, 그는 누구인가


흥남 실향민의 아들에서 인권변호사, 대통령까지 파란만장한 삶

[아이뉴스24 이영웅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9일 19대 대선에서 당선이 확정됐다. 올해 대선은 인수위가 없는 만큼 바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어야 할 문 당선인의 인생사에 관심이 쏠린다.

문 당선인의 삶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문 당선인은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한 지난 1982년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켰다.

그가 본격적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든 것은 '친구 노무현' 때문이었다. 문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상주역을 맡으며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 후로 정치적 보폭을 넓힌 그는 제1 야당 대표에 이어 대선주자,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같이 그가 대통령까지 오른 데는 이같이 노무현 후광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노무현' 벽을 뛰어넘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습하고 통합적 비전을 이룰지가 그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실향민 아들에서 인권변호사 되기까지

문 당선인은 1953년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에서 시청 농업과장을 하던 아버지는 1950년 12월 6.25 전쟁 흥남철수 때 잠시 피신한다는 생각으로 월남한 것이 남한 정착으로 이어졌다. 문 후보 가족은 문 후보가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문 당선인은 경남중·고에 이어 19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직선제 총학생회를 출범시키고 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시위를 주도하다가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그 뒤 그는 1975년 강제징집돼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문 당선인은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조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여단장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특수전 훈련 최우상 표창을 받았다. 수상 여부를 놓고 다른 당내 경선후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전역 이후 진로문제로 방황하던 중 부친이 사망하자 사법시험에 매달렸다. 1차에 합격한 그는 계엄령 위반 혐의로 다시 구속돼 2차 합격소식을 구치소에서 들었다. 3차 면접에서는 안기부로부터 전향요구까지 받았지만, 그는 거절했다. 다행히 경희대의 구명 노력 등으로 불합격 불행은 면했다.

이후 그는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으로 졸업하고 법무장관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시위 전력 탓에 원했던 판사에 임용되지 못했다. 판사 임용이 좌절되면서 대형로펌 제의도 있었지만 뿌리치고 모친이 있던 부산으로 낙향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때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노무현 친구'에서 친노 구심점으로 부상

이들은 의기투합해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문 당선인은 이후 노무현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재야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문 당선인은 자서전 '운명'에 "각종 인권과 노동사건을 맡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문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결정된 뒤 부산선대위 본부장 자리를 맡아 노 전 대통령 당선을 도우며 다시 이들은 힘을 합치게 된다.

그는 대선이 끝난 직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만류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신들이 나를 정치로 가게 했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 뒤 문 당선인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하며 노 전 대통령을 도왔다.

하지만 문 당선인은 지난 2004년 건강악화 등의 이유로 민정수석에 사퇴했다. 이후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지만, 현지 영자신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다. 탄핵 심판 기각 이후 그는 2005년 1월 민정수석, 2007년 3월 비서실장을 맡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검찰의 칼날이 노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박연차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 당선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 역할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을 적극 방어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는 재단법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친노세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현실정치인에서 최고 권력자에 오르기까지

문 당선인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3당합당 부산 사상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이는 3당 합당 이후 사상구에서 당선된 첫 번째 민주당 후보다. 그는 그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18대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그 뒤 문 당선인은 지난 2015년 초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가 당 대표직을 수행한 기간은 10개월 가량이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비노 세력의 집단탈당, 재보궐 선거 패배 등으로 최대 정치위기를 맞게 됐다.

하지만 문 당선인은 박근혜 캠프의 경제멘토이자 '경제민주화' 선구자격인 김종인 전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역임해 위기에 처한 당을 구했다. 동시에 문 당선인 자신도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태가 터지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됐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과의 파열음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 탓이다. 문 당선인은 당내 파열음을 극복하고자 당 지도부 중심 선대위 체제 구축 등으로 화학적 융합을 이루고 단일대오로 대선경쟁에 임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기도 했지만, 문 당선인은 시종일관 대세론을 형성하며 앞서나갔다. 9일 선거 결과도 이변은 없었다. 문 당선인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도전에도 일부 영납권을 제외한 대다수의 지역에서 1위를 기록하며 19대 대통령으로 확정됐다.

이영웅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조성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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