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설재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국내 산업 전문가들이 "우리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주지만 그들은 우리의 돈을 가져가서 쓰지 않고 있다"며 "끔찍한 법안으로, 반도체법과 남은 것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그 돈으로 (미국의)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어떤 이유든 원하는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에) 중요한 것은 관세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에 (여러 기업이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고 많은 다른 회사들이 오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법 폐지' 언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 시절 수조원대 보조금을 받기로 하며 대미(代美)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대가로 64억 달러(약 9조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지으며 4억5000만 달러(약 6200억원)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보조금에 대한 실제 지급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실익이 적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가로 보조금을 받기로 했던 만큼, 보조금이 없다면 우리 기업들도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아이뉴스24>와 통화에서 "미국의 반도체법이 없어질 수 있다는 예상은 그동안 여러번 제기돼왔다"며 "보조금을 안 준다면 우리도 투자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미국이 코로나 이후 반도체 공장을 현지에 짓도록 유도했던 것은, 자동차용 반도체가 부족해 자동차 공장들이 셧다운됐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투자하려 했던 첨단 칩 생산라인의 경우 굳이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더라도 타격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반도체 패권전쟁'을 펴낸 이주완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도 "어차피 미국에 공장을 짓는 건 비용 측면에서 맞지가 않다"며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면 투자를 축소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한국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미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가 붙더라도 그 양은 아주 적다"며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파는 게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테일러시에 짓기로 한 파운드리 공장에 대해서도 "현재 삼성은 빅테크 고객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고 평택 파운드리 공장도 있는데 미국에 대규모 공장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TSMC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과 삼성전자는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TSMC는 미국에 1000억달러(한화 약 165조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TSMC는 이 투자로 애리조나 1팹, 2팹 외에 6팹까지 추가로 공장을 더 지을 계획이다.
이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법을 폐지하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법을 없애더라도 이미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TSMC를 고려해 우리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난해 우리나라가 미국을 상대로 자동차, 반도체 수출로 80조원가량 흑자를 냈다"며 "이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미국산 석유와 가스에 대한 수입을 늘리고 현지에 공장을 짓는 게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email protected]),설재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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