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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경쟁력, 노동시간이 아니라 수율의 문제다"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 인터뷰
"주 52시간 예외는 특정 산업·직종·기업과 관계 없어"
"경쟁력 약화는 수율 탓...공정 엔지니어 실력 유지해야"
"기술 임원에 인사·재무권한 주며 책임감 더 강화해야"

[아이뉴스24 설재윤 기자] 반도체 특별법이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삼성전자 연구개발자 출신으로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라는 책을 써 유명해진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삼성전자의 문제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라는 쓴소리를 가감없이 쏟아냈다.

박 소장은 "주 52시간제 예외를 특정 산업이나 직종 혹은 기업에만 적용해야 할 상관 관계를 찾을 수 없고, 일단 예외를 적용하면 연관 산업을 비롯해 다른 곳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삼성 위기는 노동시간 문제가 아니라 수율이 나빠진 탓이라며 공정 엔지니어의 실력을 높이고 유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기술 임원에 인사·재무권한을 주며 책임을 강화하는 게 해법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산업인류학연구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산업인류학연구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박 소장은 삼성의 연구개발자 출신이다. 화학공학 전공으로 삼성연구소에 입사한 뒤 화학 공정 개발실에서 10년간 몸담았다. 이후 인사과로 발령 받아 인사과장으로 일했다. 지난 2023년에는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혁신성장 과정과 그 현장에서 땀 흘렸던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벌인 여정과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어떻게 혁신에 발맞춰왔는지를 기록했다.

다음은 박 소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국회에서는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지만 연구개발직군에 한해 주 52시간제를 예외로 하자는 조항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다.

"52시간 예외 적용은 반도체 같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직종 그리고 특정 회사와 상관 관계에 있지 않다고 본다. 삼성전자가 어려움에 처한 까닭은 경영진의 의사결정 문제 때문이지 노동 시간 탓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평균 주 44시간 정도 근무한다. 주 52시간 내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도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선점해 높은 영업이익률을 구현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예외 조항이 생기면 다른 직종으로 확대될 거라고 보는 듯하다.

"스타트업 경영자들 사이에서 52시간제 적용 예외에 대해 '우리도 풀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예외를 두면 모든 산업에 걸쳐 다 풀릴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특별법 안에는 반도체 외에도 국가 전략 기술로 정해놓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이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인력 중 엔지니어만 해도 5만명이 넘는다. 이들 모두 때에 따라 밤을 새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신제품 개발을 위한 특수 엔지니어라고 말하지만 한계를 긋기 모호하다.

삼성전자에는 협력사도 많다. 반도체 팹이라고 하는 거대한 생산 체계는 화학, 기계 설비 등 다수의 산업과 연관돼 있기도 하다. 예외가 확장될 수밖에 없다."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산업인류학연구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산업인류학연구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일이 몰릴 때 집중하고 일이 적을 때 몰아서 쉬면 된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

"연봉 협상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삼성은 급여 체계다. 삼성 같은 경우는 7월과 11월에 각각 업적평가를 통해 5% 혹은 10%씩 연봉을 올려준다.

만약 3월에서 5월까지 '크런치모드'로 열심히 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업적평가를 앞두고 6~7월에 놀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일이 그렇게 프로젝트 단위로 정확히 끊어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5~7월에 걸쳐 일하는 대신 3~4월에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삼성전자가 기존에 잘했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마저 잘 안되고 있는 이유는 수율이 잘 안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업은 반도체 반응기나 소재의 품질에 의해서 수율이 결정된다. 웨이퍼를 만드는데 수율을 높이려면 연구 개발 문제가 아니라 생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다 보니 소부장 산업이 같이 발전하지 못했다. 또, 수율은 기계 장치를 다루는 설비·장비 엔지니어들의 실력에 달려 있는데, 삼성은 채용을 현저히 줄이려고 했고 외주화나 자동화로 대체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TSMC, SK하이닉스, 인텔에 비교해도 (생산 설비에 대한) 외주화 및 자동화가 가장 많이 돼있다.

최근 인텔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7나노 양산에 필요한 기술력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엔지니어들을 외주화, 자동화시키지 않았고, 해당 기술력을 보존했다. 연구개발 못잖게 수율을 위한 공정시스템도 잘 점검해야 한다."

-최근 미국으로 떠나는 반도체 인재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IT 혹은 설계 전문가들이 주로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대부분 연봉에 있어 차이가 많이 난다. 삼성전자에서 AP 개발하는 직원은 연봉이 최대 2억원인데, 애플 엔지니어는 그 연봉을 훌쩍 넘는다.

또 하나는 국내에서는 엔지니어의 의사결정권이 부족하고 창업도 굉장히 드물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 구조다. 정부가 IMF 이후로 5대그룹 빅딜을 주도하면서 산업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구조이기 때문에 월급쟁이가 많고 창업도 쉽지 않다. 기술 월급쟁이로 평생 먹고 살기 힘들다고 느낀다.

해외에 나갔더니 연봉도 오르고 창업도 할 수 있다. 인텔 엔지니어를 만나봤는데, 대부분 기술 하나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더라."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이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산업인류학연구소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삼성전자 경기도 화성 반도체 공장 클린룸 [사진=아이뉴스24DB]

-기술 인력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는 말도 있는데 동의하는가.

"인사나 재무 담당 조직은 서포팅 조직이다. 이들은 기술적 의사결정에 법적 문제를 검토해주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허락해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은)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인사권과 투자 결정권을 쥐고 대기업을 움직인다. 또, 기술 엔지니어들은 재무에 복속되서 자율권이 없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될 것 같은' 사업만 하게 되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들은 기피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국가 과제 성공률이 99%에 이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성공할 것만 하고 실패할 것은 안 한다는 의미다. 그 반대로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에 대해 도전적으로 나서는 게 연구 개발이 해야 할 진짜 일 아닌가.

엔비디아의 경우 기술 임원들에게 인사권과 재무권을 다 준다. 가령 기술 임원들이 특정 인물을 뽑겠다고 요청했을 때, 인사 담당자들은 법적 검토만 해줄 뿐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임금 차이가 적지 않다면 보상체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삼성전자도 (업무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성과 평가는 많이 높일 필요가 있겠다. 삼성전자는 현재 성과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비교했을 때, 임원과 직원 사이 급여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곳이다.

애플 엔지니어는 통상 연봉 5억달러(약 6억원)를 받는다. 그런데, 6억원 정도를 줄 수 있는 국내 기업은 없다. 다른 반도체 업계와 비교해봐도 삼성의 글로벌 기준 대비 연봉이 높은 편은 아니다.

정책적으로는 지난 정부에서 시행했던, 2년 정도 다니면 적금도 더 주는 '내일 채용 공제'가 있었다. 이를 손봐서 산업 생태계 전반의 급여를 높여주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최근 조직문화를 크게 바꾸겠다고 했다.

"최근 삼성이 어려워지면서 '보고 문화'가 다시 생겼다. 예를 들면 담당자는 대표이사에게 목요일에 제출하기 위해 주보를 월요일 저녁부터 써야 한다. 중간그룹장이 화요일에 취합을 하는데 3시간 정도를 쓴다. 이후에 임원들이 모여 3시간 정도 취합을 한번 더 거친다. 결국 하루 3시간 정도를 '보고'에 쓴다는 이야기다.

반면, 과거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이러한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월요일 회의를 없앴고, 임원 퇴근 시간도 6시까지 바꿨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체 반도체 업계에서 1등을 했고, 파운드리 사업도 괜찮았다. 또, 리더 한명이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을 책임지고 실수를 해도 용인했을 때 조직이 얼마나 새롭게 일할 수 있눈지 경험한 바 있다. 일단 이러한 비효율성부터 해결해야 한다."

[박준영 산업인류학소장 주요 경력]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경제학 석사·문화인류학 박사 △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 및 인사과장 △현 산업인류학연구소장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저자

/설재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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