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서울 주택 공급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가 공공주택 공급을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에 직면했다. 신규 택지에서는 주택 공급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는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주택을 더 짓기 위해서는 주민과 조합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임대 비율을 낮추면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급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딜레마다.
염창동·용산서 공공주택 반발 확산…신규 택지 공급 곳곳서 제동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서울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발표한 신규 택지 개발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맞물리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8·13 주택 공급 대책에 포함된 강서구 염창동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서울 내 유일한 신규 택지로 염창근린공원 훼손지를 선정하고 1000가구 규모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 반발은 설명회 무산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9월 강서구가 염경중학교에서 개최하려던 주민설명회는 주민 200여명의 항의와 행사장 진입 저지로 열리지 못했다. 주민들은 공원 조성 약속이 뒤집힌 데다 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주변 주거환경과 지역 이미지가 저하되고 부동산 가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강서구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높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임대주택 추가 공급에 대한 거부감도 반발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도 대규모 주택 공급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졌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약 46만2000㎡ 부지에 국제업무·상업·컨벤션·문화·숙박 기능을 집적해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을 유치하는 비즈니스 거점으로 조성하는 국가전략사업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1월 29일 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당초 서울시 계획인 6000가구보다 많은 1만가구 공급을 발표하면서 개발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주거 기능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국제업무지구라는 본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민들도 직접 행동에 나섰다. 지난 3월 용산·노원·과천 주민들은 용산국제업무지구 부지 앞에서 공동 집회를 열고 정부의 1·29 주택 공급 대책 재검토를 촉구했다.
용산 지역 주민들은 국제업무지구의 주거 중심 개발에 반대하며 기존 6000가구 계획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은 충분한 논의 절차 없이 정부가 졸속으로 대책을 발표한 데다 국제업무 기능 약화와 기반시설 부족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주택 공급 물량이 4000가구 늘어나면서 업무시설과 주거시설의 적정 비율, 추가 주택의 공급 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재개발 임대주택 의무비율 완화 요구…정부 공공임대 공급 목표 충돌

서울 내 주택 공급을 위한 전략 중 하나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는 용적률 완화에 따른 공공주택 확보 비율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실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간 정비사업의 용적률 완화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10대 법령 개정안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하면서 민간 정비사업에도 법적 상한 용적률의 최대 1.2배를 적용하자고 요청했다.
정부도 용적률 상향에는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과 국토부는 당정협의회를 열고 공공 재개발에 법적 상한의 1.3배를 허용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에 민간 정비사업의 1.2배 완화 방안도 담아 처리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용적률 상향에 대한 논의도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서울시와 합의만 잘 이룬다면 빠른 시일 내 법 개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 시장의 정책 행보에 긍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쟁점은 용적률 완화에 따른 의무 임대주택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다. 현행 도정법상 재개발은 사업 과정에서 일정 비율의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하지만 재건축은 일반적으로 별도의 임대주택 의무 비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서 법적 상한 용적률을 적용받을 경우에는 늘어난 용적률의 일정 비율만큼 국민주택규모 주택을 건설해야 한다. 이 비율은 재건축의 경우 초과 용적률의 30~50%, 재개발은 50~75% 범위에서 정하며 서울시는 각각 30%와 50%를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재개발사업의 용적률 완화에 따른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현행 최소 50%에서 재건축 수준인 30%로 낮추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용적률을 완화해 추가 주택을 확보하더라도 늘어난 용적률의 일정 부분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하면 조합이 일반분양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된다는 설명이다.
재개발뿐 아니라 재건축을 앞둔 주민들 사이에서도 임대주택 의무 비율이 사업성을 저해하고 조합원 분담금 부담을 키운다는 이유로 비율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공적주택 공급 목표를 고려하면 임대주택 확보 문제를 단순히 정비사업의 사업성 논리로만 접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2030년까지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등을 포함한 공적주택 약 119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중 수도권 공급 목표만 약 92만가구에 달한다. 전체 목표 물량의 약 77%를 수도권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서울 도심 정비사업을 통한 공공주택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서울의 신규 택지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비사업의 공공기여를 줄이면 정부가 다른 방식으로 공공주택 공급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민간에 공공 역할 전가 vs 조합 개발이익 확대…엇갈린 시선

용적률 완화에 따른 임대주택 의무비율 하향과 지역 수용성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민간사업자의 사업성을 보장해야 공급이 늘어난다는 주장과 과도한 개발이익을 막기 위해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선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시장 경제의 원리상 임대주택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토지를 매입해 직접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현재는 공공이 담당해야할 역할을 민간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 셈"이라면서 "민간 사업자의 사업성이 확보돼야 일반 분양 물량이 늘어나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의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이미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어 사업성 확보를 이유로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낮추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서울시는 조합과 공공의 이해관계를 중재해야 함에도 지나치게 조합의 입장에 치우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낮춰 조합에 과도한 개발이익을 보장하면 공공이 확보할 수 있는 주택은 줄어들지만 조합의 수익만 커질 수 있어 외려 서울 집값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한얼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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