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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과학살인, 과기정통부 '사과'는 없었다 [정종오의 질문과답]


진상규명 이후 ‘사과’ ‘유감’ 표명 없고 재발방지대책도 안개속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진=정종오 기자]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진=정종오 기자]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질문: “2024년 윤석열정부 당시 연구개발(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박사후연구원 등 신진 연구자들의 고통이 매우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당시 사태의 진상을 규명한 종합 보고서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피해 규모를 비롯해 재발방지대책을 구체화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과기정통부의 유감이나 사과는 있었나.”

답: “R&D 예산삭감 진상규명 TF는 지난해 1차 보고서(예산삭감 관련 핵심 관계자 파악)를 내놓았다. 이어 올해 종합 보고서(구체적 피해 사례 등)가 마무리됐다. 문제는 과기정통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게 아니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도됐다는 데 있다. 진상규명의 공식 발표와 잘못된 정책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재발 방지 대책도 안개 속이다.”

박사후연구원이었던 A 씨는 2024년 과학연구 분야에서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연구하던 과제가 없어졌다. 연구과제가 사라지고 연구실 예산이 대폭 줄면서 A 씨는 “미안하다. 더 이상 인건비를 줄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당장 먹고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여기저기 관련 과제가 없나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과학자에게 연구할 기회도, 연구할 주제도 없어진 것이다. 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2024년 윤석열정부 당시 R&D 예산 대폭 삭감으로 박사후연구원 등 신진 연구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를 두고 과학계에서는 ‘폭거’ ‘살인’ 등의 섬뜩한 단어까지 동원해 당시 상황을 표현한다.

당시 R&D 예산은 2023년의 31조1000억원에서 26조000억원으로 14.8% 줄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R&D 예산삭감 진상규명 특별팀(TF)’이 2025년 8월 만들어져 진상조사에 나섰다.

박인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팀이었다. 상식적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자는 거였다. 아이뉴스24는 1차 보고서(예산삭감 지휘 체계 조사)를 지난해 12월 입수한 바 있다. 보고서 첫 장에는 ‘대외비’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했다.

1차 보고서에서는 ‘과기 원로 간담회→윤석열→최상목(당시 부총리)과 조성경(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이종호(과기정통부 장관)→주영창(과기정통부 과기혁신본부장)’으로 이어지는 R&D 예산삭감 결정 과정을 복기했다.

1차 보고서에 이어 예산삭감으로 구체적 피해 사례 등을 담은 종합 보고서가 최근 드러났다. 과기정통부가 공식 발표한 게 아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15일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것이었다. ‘2024년 R&D 예산삭감에 따른 연구 현장 영향 조사 결과’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 종합 보고서에는 2024년 원래 계획보다 연구비가 줄어든 과제가 69.8%에 달했다고 파악했다. 이 영향으로 연구자 약 8630명이 기존 연구를 접거나 팀에서 나가야 했다.

과기정통부는 1차 보고서와 종합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공식 발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윤석열정부에서 자행된 ‘과학살인’으로 연구자들은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아직도 그 후폭풍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실행했던 과기정통부가 공식 발표는 물론 유감과 사과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도 두리뭉실하다. 매번 재발방지대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산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중앙행정기관이다. 고유명사이다. 잘못된 정책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유감과 사과를 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시작은 사과에서 시작된다. 이전 정부에서 벌어졌던 일이더라도, 위에서 내린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해명되지 않는다. 과기정통부의 잘못이 맞기 때문이다.

R&D 예산삭감 진상규명이 마무리됐고 매우 심각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을 파악했다. 다음 순서는 당연히 공식적으로 실체를 공개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데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재명정부 들어 부총리급으로 승격했다. 부총리급이라면 다른 중앙부처의 이견을 조정하고 조율해 나가는 사령탑이다.

재발 방지 대책 또한 구체적이지 않고 ‘협의 중’이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부분이 지적됐다. 정부는 R&D 예산삭감 재발 방지 대책으로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 R&D 예산 확보 △계속 과제 미삭감 원칙 △전문위원회 중간 검토 절차 신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상 강화와 심의 기능 체계화 등을 내놓았다.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진=정종오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부의 2027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

이중 가장 중요한 총지출 대비 5% 수준 확보는 재정 당국과 논의에서 답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 대책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훈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예산삭감 종합 보고서를 보면) 충격적이고 그 후폭풍이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며 “재발 방지 대책이 현재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됐는지 파악해야 하고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예산과 관련해서는 기획예산처와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부총리급의 과기정통부가 건강하고 신뢰받는 행정기관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모습에서 거듭나야 한다. 그 시작은 진상규명이다. 다음은 피해를 본 과학계에 유감과 사과하는 데 있다.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상규명만 해놓고(관계 기관에 정보를 흘리듯) 두리뭉실 간접적으로 넘기려는 과기정통부의 모습은 과학기술계에 실망만 안길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진상규명 보고서를 공개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부총리급다운’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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