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햇빛으로 수소를 만들려면 빛에서 얻은 에너지를 반응에 쓰일 때까지 붙잡아 둬야 한다. 빛을 받아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원래 자리로 곧바로 돌아가면 그 에너지를 활용할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동연구팀은 빛을 받아 화학반응을 돕는 소재 속 작은 빈자리가 ‘전자의 대기실’처럼 작용해 빛 에너지를 활용할 시간을 벌어주는 원리를 알아냈다.
KAIST(총장 배충식) 화학과 김태규 교수 연구팀이 경희대(총장 김진상) 김태우 교수, 가톨릭대(총장 최준규) 김중한 교수, 포항가속기연구소(소장 김재영) 이재혁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이산화티타늄 속 ‘산소 결함’이 전자를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원리를 규명했다. 산소 결함은 소재를 구성하는 산소 원자가 빠져 생긴 빈자리를 뜻한다.
![국내 연구팀이 빛 에너지를 오래 잡아둘 수 있는 '전자 대기실'을 찾아냈다. [사진=KAIST]](https://image.inews24.com/v1/082d5a316c42b2.jpg)
이산화티타늄은 빛을 받으면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광촉매’의 대표적 소재다. 태양광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거나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물질로 바꾼다.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기술에 활용할 수 있어 친환경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이 소재에 빛을 비추면 전자가 에너지를 얻어 이동하고 전자가 떠난 자리에는 ‘정공(전자가 비운 자리)’이 생긴다. 전자와 정공은 각각 화학반응에 쓰일 수 있는데 반응에 참여하기 전에 전자가 정공을 다시 채우면 빛에서 얻은 에너지를 활용할 기회를 잃는다. 이를 ‘재결합’이라고 한다. 전자와 정공이 곧바로 재결합하지 않도록 해 반응에 활용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산소 일부가 빠져 푸른빛을 띠는 ‘블루 이산화티타늄(blue TiO₂)’에 주목했다. 이 소재의 산소 결함은 전자가 잠시 머무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정공이 ‘전자가 비운 자리’라면 산소 결함은 ‘산소 원자가 빠진 자리’로 서로 다르다. 이번 연구에서는 산소 결함이 전자를 어떻게 붙잡고 재결합을 늦추는지 살펴봤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인 ‘엑스선 자유전자레이저(X-ray Free Electron Laser)’를 활용했다. 초고속 카메라로 순간 움직임을 포착하듯 매우 짧은 엑스선 펄스로 빛을 받은 소재 내부의 변화를 추적하는 장치다. 연구팀은 티타늄 원자 주변의 변화를 1,000조분의 1초인 ‘펨토초(femtosecond)’ 단위로 관찰했다. 여기에 빛의 흡수 변화를 측정하는 광학 분석과 컴퓨터 계산을 결합했다.
그 결과 일반 이산화티타늄과 블루 이산화티타늄 모두 빛을 받은 직후에는 전자가 빠르게 에너지를 일부 잃고 일시적으로 붙잡혔다. 차이는 그다음 과정에서 나타났다. 블루 이산화티타늄에서는 산소 결함의 영향으로 전자가 더욱 안정적으로 붙잡히는 ‘깊은 포획 상태’가 형성됐다.
이번 연구는 산소 결함이 전자를 붙잡는 과정부터 주변 원자 구조의 변화, 재결합이 늦어지는 결과까지 연결해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산소 결함의 양과 분포를 조절해 전자를 오래 유지하는 광촉매를 설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태양광 수소 생산과 이산화탄소 전환, 오염물질 분해 등에 필요한 고효율 광촉매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성능을 높이려면 오래 붙잡힌 전자가 화학반응에도 효과적으로 참여하는지 후속 연구로 확인해야 한다.
김태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소재 속 산소가 빠진 빈자리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전자를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라며 “앞으로 소재의 미세한 구조를 조절해 빛 에너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광촉매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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