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구조를 보는 것은 전문가 영역이다. 장비와 기구를 이용한다. 미세한 움직임이나 구조를 파악해 지금은 풀 수 없는 비밀에 조금씩 접근한다. 암 전이와 혈관재생 등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현미경이 만들어졌다.
혈관을 이루는 세포나 일부 암세포는 세포 밖 돌기를 안테나처럼 뻗어 주변을 탐색하고 이동한다.
이 돌기의 움직임과 세포 안에서 필요한 물질을 나르는 작은 주머니를 동시에 한 화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 기술이 개발됐다. 암의 전이나 혈관재생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변형 전반사 형광현미경은 세포 가장자리에서는 돌기 전체를 비추고, 안쪽에서는 바닥 부근만 얕게 비춰 돌기의 흔들림과 세포막 근처 소포의 이동을 한 화면에서 동시에 기록한다. 자궁경부암 세포의 돌기 움직임과 소포 이동을 한 화면에서 동시에 촬영했다. [사진=UNIST]](https://image.inews24.com/v1/4daf541176b794.jpg)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박정훈 교수팀은 같은 화면에서도 구역마다 빛을 비추는 깊이를 다르게 조절해 여러 세포 구조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가변형 전반사 형광현미경(Tunable TIRF)’ 기술을 개발했다.
혈관 내피세포나 암세포는 필로포디아(filopodia)와 같은 돌기를 뻗어 주변 환경을 탐색한다. 주변 구조물과 상호작용하거나 부착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돌기의 형성과 성장에는 세포골격의 재구성과 함께 소포를 통한 물질 수송이 함께 한다. 소포는 세포막 구성 성분이나 단백질 등을 세포 내에서 운반하는 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구조체다.
개발한 현미경 기술을 이용하면 돌기가 움직일 때 소포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형광 표지자를 달아놓은 세포를 유리 바닥 위에 놓고 아래에서 빛을 비춰 표지자에서 나오는 빛으로 세포 구조와 움직임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구역마다 빛을 비추는 깊이가 다른 조명을 동시에 적용할 수 있다. 기존 기술들과 달리 바닥 가까운 소포와 위로 들린 돌기를 한 화면에서 동시에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제1저자인 정윤돈 연구원은 “137~558나노미터(nm) 두께의 얇은 층을 비추는 빛과 세포 전체 높이까지 비추는 빛을 한 화면의 서로 다른 구역에 동시에 적용할 수 있다”며 “같은 노출시간을 기준으로 두 깊이를 번갈아 촬영할 때보다 두 배, 세 깊이를 번갈아 촬영할 때보다 세 배 빠르게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일반 형광현미경의 조명 경로에 ‘디지털 미세거울 소자(DMD)’와 ‘공간 필터’를 추가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 DMD는 수백만 개의 아주 작은 거울들이 바둑판식으로 배열돼 있다. 각 거울의 각도를 조절하면 렌즈 쪽에서 봤을 때 소자 표면에 어둡고 밝은 줄무늬가 생긴다.
이 줄무늬의 간격이 좁으면 빛이 더 큰 각도로 들어가 바닥 부근만 얕게 비추고 간격이 넓으면 더 작은 각도로 들어가 세포 안쪽까지 깊이 비출 수 있다. 공간 필터는 미세거울 소자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빛 가운데 필요한 방향의 빛만 통과시키는 역할이다.
DMD의 줄무늬 패턴을 초당 1440회 바꿀 수 있어 영상 품질도 높일 수 있다. 빛을 한 방향에서만 비추면 세포 구조에 빛이 산란돼 밝은 줄이나 얼룩이 생길 수 있는데, 여러 방향에서 번갈아 비추면 이런 무늬가 줄어 영상이 더 고르게 보인다.
연구팀은 실제 이 기술로 사람 탯줄 정맥에서 유래한 혈관 내피세포(HUVEC)를 살아 있는 상태로 관찰했다. 가장자리에는 세포 전체 높이를 비추는 빛을, 중심부에는 바닥 부근만 비추는 얕은 빛을 쪼여 가장자리 세포막이 일렁이는 모습과 바닥 가까운 소포의 이동을 한 영상에 담았다. 자궁경부암 세포(HeLa)의 돌기 흔들림과 세포막 근처 소포의 이동을 초당 20장으로 동시에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박정훈 교수는 “관찰 대상 전체에 하나의 조명 방식만 쓸 수 있다는 현미경의 오랜 전제를 새로운 개념의 설계로 뒤바꾼 연구”라며 “상처 회복이나 암 전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포 이동과 세포막 수송, 세균 감염 등 여러 깊이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관련 치료제를 연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논문명: Tunable TIRF Microscopy: Simultaneous Visualization of Intracellular Dynamics at Multiple Depths)는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강주헌·김하진 교수,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의 이상규 박사가 함께 했다. 광학 분야 국제학술지 ‘레이저 앤 포토닉스 리뷰(Laser & Photonics Reviews)’에 9월 22일자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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