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질문: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은 과학기술을 뒷받침하는 핵심이다.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의 35조5000억원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R&D 예산이 탈바꿈하는 생태계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답: “홍성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은 성과의 승계와 생태계 재생산이 부족했다는 것에서 답을 찾는다. 그동안 정부는 자율과 책임, 저변확대, 선택과 집중, 분권과 통합 사이는 조정해 왔는데 성과의 승계와 생태계 재생산을 위한 운영체계는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혁이 반복돼도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구조적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세계는 기술개발 경쟁에서 지금 혁신생태계 경쟁으로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진=정종오 기자]](https://image.inews24.com/v1/5c1a27782f9c30.jpg)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부의장 이경수, PACST)는 13일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제1차 PACST 과학기술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함께 마련한 정책 논의의 장이다. 기술 패권 경쟁과 사회적 난제가 중첩되는 환경 속에서 지난 60년 동안 국가 연구개발(R&D)의 목적과 방향을 재점검하고 다음 60년의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조 발제는 홍성주 STEPI 선임연구위원(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위원)이 맡았다. ‘한국 혁신생태계의 역사적 경로와 미래 전환 전략’을 주제로 해방 이후의 국가 R&D 발전 경로를 시기별로 살펴봤다. 과학기술 혁신생태계의 건강성 진단을 토대로 앞으로의 국가 과학기술 비전과 전환 방향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1962년 60만 기술 인력 양성, 1967년 과학기술처 신설, 1989년 이학연구센터(SRC)와 공학연구센터(ERC)를 통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다. 1962년 제1차 기술진흥5개년계획은 한국 과학기술 발전 경로를 교육-과학 중심이 아니라 경제-기술 중심의 계보로 만들었다.
1967년 과학기술처는 집행력이 강한 라인형(관리형) 통합기구보다 조정 기능을 가진 스태프형(참모형) 부처로 출범했다. 1982년 R&D의 새로운 수단이 정립됐다. ‘기관→사업→과제(프로젝트)→협약→평가’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관리체계가 마련됐다.
1998년 국가 과학기술 체계의 관리 방향이 설정되고 과학기술부는 그 주체로 승격했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는 2007~2018년이었다. 과학기술 관련 자문·심의·예산조정·집행을 어느 조직에 결합할 것인지, 과학기술과 ICT, 과학기술과 교육 등에 대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버넌스는 색깔을 달리했다. 여기다 붙였다, 저기다 떼기를 반복했다.
이 시기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달리했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이명박 정권),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박근혜 정권),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재인 정권)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때마다 거버넌스는 흔들렸다. 국가 과학기술 체계의 혼란스러운 변동으로 ‘국가적 질문의 실종 시대’를 맞았다.
홍 위원은 “다음 60년의 정책은 과거의 성취 위에서 새로운 ‘국가적 질문을 설계’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만큼 투자하는데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역대 정부 모두 제기해 왔다”고 전제했다.
무엇을 위해 투자하는가(목적론)와 제대로 하고 있는가(효과성)를 따져봐야 한다는 거다. 홍 위원은 “안타깝게도 2001년 이후 대부분 정책은 목적론 탐구를 등한시하고 목적을 단순 레토릭(수사학)으로 치환했으며 ‘제대로 하고 있는가’의 효과성 검증만 되풀이해 왔다”고 진단했다.
외부 압박 등이 왔을 때 무엇이 먼저 사라질지는 목적의 우선순위에 따라야 하는데 현실은 방어 논리의 강도가 결정했다.
실제 윤석열정권 당시 2024년 R&D 예산 삭감 때는 방어 논리가 약한 쪽이 더 취약했다고 설명했다. 홍 위원은 “2024년 정부 R&D 예산은 전년보다 14.2%나 감소했다”며 “충격은 균등하지 않았는데 삭감 후폭풍은 신규 진입과 저변에 집중되고 기존 대형 수행 주체는 상대적으로 보호됐다”고 말했다.
시대별로 연구개발의 지향점을 정리해 보면 1945~1960년에는 ‘해방된 국가의 과학기술 건설’, 1960~1980년 ‘경제 추격을 위한 국가 과학기술 체계 확립’, 1980~2000년 ‘기술 자립화를 위한 국가 R&D’, 2000년~현재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국가혁신체계’로 정리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홍 위원은 “정부별 처방은 자율과 책임, 저변확대와 선택과 집중, 분권과 통합 사이를 조정해 왔는데 성과의 승계와 생태계 재생산을 위한 운영체계는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며 “개혁이 반복돼도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구조적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세계는 기술개발 경쟁에서 지금 혁신생태계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융합·지정학·사회적 난제가 중첩되면서 경쟁력은 다양한 주체를 연결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생태계 역량에 좌우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진입-검증-성장의 사다리 부재’ ‘평가-학습-전환의 미연결’ ‘성과 승계의 단절’ ‘'방향성-공공가치의 측정 공백’ 등 병목현상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이런 병목이 조정되지 않는 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은 기존 제도의 정리 없이 ‘추가’되고 개혁은 반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포럼은 연말까지 이어지는 ‘PACST 과학기술 포럼’ 4회 시리즈의 첫 회차이다. 1차 포럼은 국가 R&D의 이유와 방향을 담은 총론을 제시하고 이후 회차는 각각 국가 R&D의 지원방식과 성과, 지속 가능한 연구환경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구체화한다.
이경수 부의장은 “지난 시간 동안 국가와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중차대한 구실을 했던 국가 R&D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지금 국가 R&D의 목적과 방향을 원점부터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번 포럼이 국가 R&D가 유의미한 성과를 도출할 방안을 탐색하는 마중물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포럼을 시작으로 과학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헌법 개정안도 함께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헌법 제127조 ①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헌 논의가 본격 시작되면서 ‘제127조①’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경수 부의장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이젠 과학기술 자체(Thing-in-itself)로 나아가야 한다”며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과학기술이 국민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둔 듯한 이 조항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