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구서윤 기자] 국내 담배시장에서 해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담뱃세 인상'입니다.
그동안 정부와 보건당국은 국민 건강 증진과 흡연율 저하, 그리고 세수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담뱃값 인상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흡연자들의 거센 반발과 '서민증세'라는 가파른 여론 역풍에 부딪히며 결국 본격적인 논의가 힘을 잃고 유야무야되는 흐름이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왔습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담배가격은 지난 2015년 한 차례 인상된 이후 무려 11년째 큰 틀에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현재 일반 궐련담배 주력 가격대는 한 갑당 4500원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그사이 우리 경제 소비자물가와 최저임금, 외식비 등 전반적인 생활물가가 가파르게 가치를 높여온 점을 감안한다면 경제학적으로 담배의 '실질가격'은 과거보다 오히려 크게 낮아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25일 서울 명동의 한 흡연부스 앞. 다수의 흡연자들이 부스 밖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구서윤 기자]](https://image.inews24.com/v1/2597c199d19489.jpg)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예년과 다소 달라 보입니다. 보건당국이 단순히 경고그림이나 금연구역 확대 같은 비가격정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가격정책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담뱃세 인상을 바라보는 국민여론 역시 과거에 비해 비교적 우호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 선진국을 중심으로 특정세대 담배구매를 아예 제한하는 강력한 금연정책이 확산하고 있는 점도 인상론에 힘을 싣습니다.
글로벌 규제 트렌드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담배 가격정책을 더는 미루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 11년 묶인 담뱃값…정부는 신중론
담뱃값 인상론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보건당국의 전향적인 가격정책 언급이었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전자담배와 가향담배, 합성니코틴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며 가격정책과 비가격정책을 병행해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과 비교했을 때 국내 담배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꼽았습니다. 2023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담뱃값은 한 갑당 1만원선에 육박해 국내 주력 가격대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입니다.
정부가 지난 3월 확정한 '제6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담뱃값 인상 관련 방향성을 명시한 점도 인상론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당장 내일부터 가격을 올리겠다는 직접적 선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기적인 거시경제 지표와 연동해 중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현재 4500원선에 묶여 있는 담뱃값이 향후 OECD 평균에 근접한 1만원 안팎까지 단계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다만 정부는 실제 인상추진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경제 체감물가 및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정책적 방향성은 열어두되 당장 현시점에서 구체적인 인상스케줄을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시장의 과열된 관측에는 신중한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 국민 63% "담뱃세 인상 찬성"…흡연자와 인식차
국민여론 역시 담뱃값 인상론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5월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실시한 대국민 기획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3%가 담뱃세 인상에 찬성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응답자의 66%는 담뱃세를 올리는 것이 실제로 흡연율을 떨어뜨리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다만 실제 담배를 소비하는 흡연자 집단에서는 확연한 인식차이가 나타났습니다. 흡연자들은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으로 '청소년 대상 흡연예방 교육'을 꼽았습니다. 가격인상보다 교육과 예방 중심의 비가격정책을 선호한 셈입니다.
적정 담배가격에 대한 의견으로는 응답자의 36%가 '4500원초과~6000원이하'를 선택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1만원이상'이 적절하다는 답변도 26%에 달했습니다.
이는 한 번에 가격을 1만원대로 올리는 방식에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현재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단계적인 인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음을 시사했습니다.
보건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흡연자들 반발에만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선 안 된다고 짚고 있습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대한민국 국민 중 흡연자는 20~30% 수준이고 대다수는 비흡연자"라며 "담뱃세 논의에서는 일부가 아닌 전체 여론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담뱃세를 언급하면 표가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지만 소수 흡연자 목소리에 놀라 매번 정책을 뒤로 미루는 흐름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 해외선 '담배 없는 세대'…가격 넘어 접근 제한
최근 해외 금연정책은 단순한 가격인상을 넘어 담배 접근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담배 없는 세대' 정책입니다.
영국은 2009년 1월1일 이후 출생자에게 담배판매를 금지하는 '2026 담배 및 전자담배 법안(Tobacco and Vapes Act 2026)'을 법제화했습니다. 지난 4월 국왕 재가를 받아 최종 확정된 이 법은 흡연 허용 연령을 매년 한 살씩 높이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17세 하인 세대는 성인이 된 뒤에도 평생 합법적으로 담배를 살 수 없게 됩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 규제'에 있습니다. 담배를 소지하거나 피우는 행위자체를 처벌하기보다 금지 대상자에게 담배를 판매한 상인이나 대리구매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식입니다.
동아시아와 다른 대륙에서도 이와 유사한 거센 규제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베트남 보건부는 지난달 2010년이후 출생자의 담배구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안하며 청소년층의 니코틴 중독 차단에 나섰고 몰디브는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2007년생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담배판매와 사용을 전면금지하는 제도를 시행중입니다.
우리나라가 이 같은 전면적인 구매제한을 당장 도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글로벌 금연정책의 무게중심이 가격과 규제를 동시에 조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가격정책 논의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학계 "실질 담뱃값 하락"…정기 인상론 제기
학계에서는 담뱃세를 단순한 세수 확보 수단이 아니라 지방재정과 공중보건을 함께 아우르는 '교정과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담배 소비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가격에 합당하게 반영해 흡연율을 낮추는 동시에 약화된 지방세원 기능도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허원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1일 열린 '지방재정 확충과 담뱃세 보완방안' 세미나에서 담뱃세 구조의 근본적 보완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허 교수는 "현재 담뱃값은 2015년 인상된 4500원에 10년 넘게 묶여 있다"며 "그간의 물가상승률을 대입해보면 실질적인 담배가격은 약 3000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과 다름없으며 결과적으로 과세 실효성이 크게 왜곡된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담뱃세는 지방세인 담배소비세와 개별소비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구조로 지방재정 자립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담뱃값이 장기간 동결되면서 전국 재정자립도는 2016년 46.6%에서 2025년 43.2%로 하락했고 재정자주도 역시 같은기간 68.4%에서 64.9%로 동반 저하됐습니다.
이에 학계에서는 시장의 극심한 저항과 사재기, 불법유통 등 부작용을 야기하는 '일회성 대폭 인상'보다는 1~2년 주기로 물가를 반영해 점진적으로 올리는 '정기적 정액 인상'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 담배업계도 복잡한 셈법…가격 인상 명분 생기나
담뱃세 인상 논의를 바라보는 담배업계 셈법도 복잡하기만 합니다. 담배회사들 역시 최근 물류비와 인건비, 원부자재 가격상승으로 상당한 원가 압박을 받고 있지만 독자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주력제품 가격을 직접 올렸다가는 흡연자들의 거센 비판을 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부가 담뱃세를 인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명분이 확보됩니다. 세금 인상분이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인 만큼 담배회사 입장에서는 직접 인상을 선언하는 것보다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인상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담뱃값 인상은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뚜렷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서민층 지갑사정과 직결되는 탓에 자칫 잘못하면 '서민증세'라는 거대한 여론 역풍으로 번질 위험이 큽니다.
정부가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보건복지부를 통해 "당장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없다"며 한발 물어서는 태도를 반복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부담감 때문입니다.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논의 역시 본격적인 정책 집행에 앞서 여론의 온도를 타진해보는 전형적 '군불 때기'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됩니다.
국민 건강과 지방재정 확충, 가격정상화까지 담뱃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물가상승과 해외의 강력한 규제 흐름속에서 11년째 동결된 4500원이라는 가격표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인상론이 예년처럼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실질적인 제도개편으로 이어질지 담배시장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구서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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