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에 합의하면서 장기간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가능성이 커지자 국내 정유업계가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폐지 시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정부는 원유 수급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 이란 측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15일(현지시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전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장기간 폐쇄됐던 호르무즈 해협도 오는 19일을 전후해 개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오는 18일 제7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같은 날 정유사 손실 보전 기준을 담은 관련 고시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발표가 최고가격제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업계는 최고가격제 종료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지난 3월 도입된 최고가격제는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됐지만, 정유사들은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상당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업계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 약 3개월 동안 국내 정유사들의 누적 손실액이 4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2차 최고가격제 발표 이후 6차 발표까지 네 차례 연속 가격 상한선을 동결하면서 정유사들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종전 합의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현실화되면 국제유가와 수급 불확실성도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현재 실제 조기 폐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정부 발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가격제 폐지 기대감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정부가 제시한 종료 조건이 상당 부분 충족되고 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종료,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국제유가 배럴당 90달러대 진입 여부 등을 최고가격제 종료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언급한 바 있다.
현재 미국과 이란의 종전이 가시화되고 있고 국제유가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현지시간 15일 ICE선물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3.2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4.9% 하락했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80.75달러로 4.8% 내렸다. 전쟁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빠르게 진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는 최고가격제 폐지에 대해 섣부른 판단 보다는 시장 안정 여부를 우선 확인 한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지난 15일 설명자료를 통해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상황, 국제 유가 수준, 최고가격제 종료에 따른 국내 유가 상승 가능성 등 제반적인 여건을 고려해 최고가격제 종료 여부 및 시점을 검토할 예정"이라면서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산업부의 이 같은 입장은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원유 공급망이 즉각 정상화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중동에서 아시아까지 원유를 운송하는 데만 통상 3주 안팎이 소요되는 데다 항만 적체와 그간 묶여 있었던 선박 및 물류 병목 현상까지 고려하면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완전히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최소 2~3개월이 걸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협에 설치된 기뢰 제거 작업 역시 병행돼야 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이 묶인 국내 선박은 24척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전쟁 기간 급등했던 선박 보험료도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물류 비용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원유 조달 비용 부담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산유국들의 생산 정상화 속도 역시 변수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는 지난달 3일 개최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에너지 컨퍼런스에서 생산량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 10~12주가 필요하며, 6~8주 내에는 정상 생산량의 약 70%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요 산유국들의 생산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한얼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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