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권서아 기자] 삼성전자 사측이 20일 중앙노동위원회 잠정 조정안을 끝내 수용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과주의 경영원칙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이 단순 임금·성과급 갈등을 넘어 삼성전자의 기존 ‘투자 우선·성과주의’ 경영 철학과 노조의 ‘성과 공유’ 요구가 정면 충돌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사실상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구조 도입 여부였다.
기존에는 회사가 경영 상황과 투자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과급 규모를 결정했다면, 노조는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 재원으로 직접 연동하는 구조를 요구해왔다.
영업이익이 늘어나면 성과급 역시 자동으로 커지는 구조다. 노조는 이를 통해 AI 반도체 호황기 성과를 직원들과 직접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존 성과주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사후조정 결렬 이후 입장문을 통해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회사 경영의 기본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가 성과급 규모와 내용 대부분을 수용했음에도 노조는 적자 사업부에도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규모의 보상을 요구했다”며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회사 경영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마지막까지 쟁점이 된 추가 성과급 재원의 ‘부문 공통 배분’과 ‘사업부 배분’ 비율 문제에서도 회사는 사업부 성과 반영 비중을 높게 유지하려 했다.
사측은 공통 3, 사업부 7 수준의 배분 구조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를 낸 사업부에 더 큰 보상을 줘야 한다는 기존 성과주의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다.
노조는 전사 공통 재원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며 공통 6, 사업부 4 수준을 요구했다. 이후 새벽 협상 막판에는 공통 4, 사업부 6 수준까지 양보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사측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막판까지 기존 성과주의 원칙을 유지한 배경 중 하나로 최근 법원의 가처분 결정도 거론한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8일 삼성전자 측이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등을 상대로 낸 위법쟁의행위금지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법원은 반도체 생산라인 안전·보안 작업과 웨이퍼 관리, 설비 유지 작업 등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생산라인 점거와 출입 방해 등을 금지했고, 위반 시 하루당 1억원 규모 간접강제도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생산라인 셧다운 형태의 고강도 쟁의행위 부담이 커지면서 삼성전자 역시 일정 기간 생산 차질을 방어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은 창사 이후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과 강한 성과주의 문화를 유지해온 기업이다.
앞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인센티브 시스템은 자본주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며 성과 중심 보상 체계를 강조했다. “일류에게 일류에 맞는 연봉을 주지 않으면 일류가 안 된다”는 발언도 남겼다.

삼성전자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부가가치(EVA, Economic Value Added) 기반 성과 체계를 운영해왔다. 단순 영업이익이 아니라 투자 비용까지 함께 고려해 실제 창출된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투자 우선’ 전략과도 연결된다. 당장 성과급을 크게 늘리기보다 호황기에 확보한 현금을 미래 투자 재원으로 남겨두는 구조다.
실제 삼성전자는 메모리 업황이 악화된 시기에도 설비 투자를 크게 줄이지 않았고, 이후 업황 반등 과정에서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을 더 키워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렬 역시 삼성전자가 향후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미국 공장 투자 등 대규모 투자를 앞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한 이후 노조 조직력이 빠르게 확대됐다.
올해 초에는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가 처음으로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결국 과반 노조 출범 이후 첫 임단협에서 노조는 총파업까지 예고했지만, 삼성전자는 끝내 기존 성과주의 원칙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역시 이번 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산업계 전반에서 영업이익이나 순이익 일부를 성과급 재원으로 직접 연동해달라는 노조 요구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카카오 노조는 최근 영업이익의 13~15% 수준을 성과급으로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며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노조 역시 순이익의 30% 수준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영업이익 30% 성과급 배분 방안을 담았다.
/박지은 기자([email protected]),권서아 기자([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