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국내 연구팀이 학습을 여는 ‘잠금해제 회로’를 규명하면서 학습과 기억의 원리를 제시해 눈길을 끈다.
한국뇌연구원(KBRI, 원장 이승복)은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원 공동연구팀이 소뇌에서 학습을‘유도하는’새로운 시냅스 구조와 신경세포 연결 회로를 규명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3차원 전자현미경과 AI 분석기술을 활용한 뇌지도(커넥톰) 분석을 통해 이뤄졌다.
우리 뇌에는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존재한다. 이들은 수백조 개 이상의 시냅스로 연결된 ‘커넥톰(Connectome)’을 형성한다. 이 연결 지도를 ‘뇌지도’라고 부른다.
![평소에는 푸르키네 뉴런(PC)이 MLI1이라는 뉴런에 의해 억제돼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등반섬유(CF)가 동시에 활성화되면 MLI2가 작동하고, 기존의 억제가 풀리면서(탈억제) 푸르키네 뉴런의 활성이 증가해 학습이 가능해진다. [사진=한국뇌연구원]](https://image.inews24.com/v1/8e46c7be9c6b6c.jpg)
이러한 신경세포 연결망은 우리가 새로운 운동이나 지식을 학습하는 핵심 기반이다. 뇌는 어떤 기준으로 ‘언제 학습할지’를 결정할까?
국내·외 공동연구팀이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소뇌(cerebellum) 뇌지도에서 찾아냈다. 소뇌는 정교한 운동 수행에 핵심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이다. 등반섬유(climbing fiber)라는 신경 줄기가 소뇌 밖에서 들어와‘동작 오류(error)’신호를 전달해 학습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반섬유는 오류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그 기능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연구팀은 해답이 신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처리하는 신경회로 구조에 있다고 보았다. 성균관대 김진섭 교수팀, 한국뇌연구원(KBRI) 이계주 박사팀, 미국 콜로라도대 Christie 교수팀, 기초과학연구원(IBS) 홍성호 박사팀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뇌지도 분석, 뉴런 활성 측정, 신경회로 모델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유전자조작 동물행동 분석을 결합해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규명했다.
그 결과 등반섬유가 소뇌의 최종 출력 신호를 조절하는 푸르키네 뉴런(Purkinje cell)에만 시냅스로 연결된다는 기존 이론과 달리 주변 억제성 뉴런 가운데 특정 뉴런에도 시냅스로 연결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뉴런은 푸르키네 뉴런을 직접 억제하는 또 다른 억제 뉴런을 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푸르키네 뉴런의 억제를 해제하는 ‘탈억제(disinhibition) 회로’를 형성한다.
시뮬레이션과 뉴런 활성 측정 결과 이 탈억제 회로는 여러 등반섬유가 동시에 활동할수록 강하게 작동했다. 동시에 활동하는 등반섬유의 수가 많을수록 푸르키네 뉴런 내부의 칼슘 이온 농도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시냅스 연결 강도를 변화시켜 학습을 유도할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한다. 반면 등반섬유의 비동시적 활동은 억제를 극복하지 못해 학습 가능 조건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오류가 없는 상황에서는 소수의 등반섬유만 활동해 탈억제 회로가 작동하지 않고 억제 뉴런이 푸르키네 뉴런의 활성을 억누르며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오류 상황에서는 여러 등반섬유가 동시에 활성화되면서 탈억제 회로가 작동하고, 억제가 해제돼 학습이 가능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뇌지도 분석을 통해 제시하고 이를 이론화와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나아가 약물 처리를 통해 탈억제 회로의 작동을 방해하자 운동 학습 효과가 감소했으며 광유전학 기법으로 억제 뉴런의 활성을 낮추자 학습 능력이 다시 회복되는 것도 확인했다. 이는 해당 회로가 실제 운동 학습에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학습 여부를 결정하는 잠금-해제 회로를 규명함으로써 뇌가 학습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기본 원리를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공동 교신저자 한국뇌연구원 이계주 박사는 “10여 년 전 기관 설립 초기부터 시작한 정밀 뇌지도 연구가 의미 있는 결실을 맺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초고속 전자현미경과 AI 기반 분석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뇌 영역의 커넥톰 분석을 더욱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신저자 성균관대 김진섭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학습과 기억이 뉴런과 시냅스 연결을 통해 이뤄지는 작동원리를 규명해 다양한 뇌 기능의 작동 원리 중 하나를 제시한 것”이라며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깊어질수록 의학적·공학적 응용의 수준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논문명:Synchronous climbing fiber activity enables instructive signaling for cerebellar learning through modulation of disinhibitory circuits)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실렸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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