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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봉에서 EVA·영업이익 10%까지…성과급의 역사


“사장 재량”에서 “객관적 평가” 요구로
IMF 이후 대세는 삼성식 성과주의
MZ세대 등장후 산정 기준 중요해져

[아이뉴스24 박지은·황세웅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수십조원이 걸린 성과급 지급 문제를 놓고 총파업 직전에 몰리고 다른 기업들도 성과급이 임급협상의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성과급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1일과 12일 이틀간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으로 재협상에 나섰지만 끝내 성과급 제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15일에는 삼성전자 사장단과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노조와 직접 면담했지만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오는 21일부터 18일간 예정된 총파업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한국 산업계에서 '성과급'은 노란봉투에 담긴 금일봉부터 주식보상(RSU), 영업이익 재원까지 변천사를 겪어왔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한국 산업계에서 '성과급'은 노란봉투에 담긴 금일봉부터 주식보상(RSU), 영업이익 재원까지 변천사를 겪어왔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삼성전자 노사는 성과급 재원과 '제도화'를 두고 정면 충돌하고 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고 지급 상한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를 명문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사업부별 실적 편차와 경영 유연성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성과급 규모만 연간 수십조원에 달하고 인당 수억원에 이르면서 이 논란은 이제 개별 기업의 단순 임금협상을 넘어 한국 기업문화와 세대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슈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성과급은 연말이면 사장이 노란 봉투에 금일봉을 담아 돌리던 ‘격려금’ 성격이 강했다. 이후 외환위기(IMF), 연봉제, 미국식 성과주의, 반도체 초호황, MZ세대 공정성 문화 등을 거치며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공식처럼 나누는 구조까지 등장했다. 또 과거에는 “얼마를 받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왜 그 금액이 나왔는가” "그 금액은 얼마나 투명하게 산정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셈이다.

노란봉투·떡값…성과급은 원래 ‘사장 재량’이었다

1970~1980년대 산업화 시기 성과급은 지금과 성격이 크게 달랐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 등에 따르면 당시 기업들은 기본급 자체가 높지 않았다. 대신 명절상여금, 생산장려금, 특별격려금 등을 통해 임금을 보완했다.

성과급 역시 체계적인 산식보다 “회사가 잘되면 챙겨주는 돈”에 가까웠다. 연말이나 목표 달성 시 사장이 현금이 담긴 노란 봉투를 돌리는 문화도 이 시기 흔했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생산량과 작업량에 따라 추가 수당을 주는 능률급·도급제 방식도 확산했다. 자동차·전자·조선업 생산직 중심으로 “더 많이 만들면 더 받는다”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영업이익이나 주주환원 개념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성과급은 어디까지나 회사 재량 영역에 가까웠다.

삼성전자 노조 조합원 4만 여명이 23일 경기 평택시 고덕 삼성로 일대를 가득 메우고 총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IMF 이후 연봉제 확산…삼성이 성과주의 이끌어

한국 기업 성과급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뀐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들은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 대신 미국식 성과주의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했다. 구조조정과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성과를 낸 만큼 보상한다”는 개념이 경영 핵심으로 떠올랐다.

삼성은 당시 가장 공격적으로 성과주의를 도입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인사 혁신에 나섰고 1995년 연봉제를 도입했다. 이후 외환위기를 거치며 성과주의 체계를 더욱 강화했다.

삼성 계열사 인사·경영혁신 부서에서 25년간 근무한 가재산 피플스그룹 이사장은 저서에서 “IMF 이후 미국식 성과주의가 급격히 도입되며 연봉제와 성과급이 빠르게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삼성은 직급별 호봉 체계를 약화시키고 조직 평가와 개인 평가를 연동한 브로드밴드(Broad-band) 방식 연봉제를 확대했다. 근속연수보다 성과와 역량이 중요해진 것이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장이 11일 세종 중앙노동위원회 제1조정회의실에서 열릴 노사 노동쟁의 집중교섭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황세웅 기자]

PI·PS·EVA…삼성이 시작한 한국형 성과주의

지금은 성과급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만 과거 삼성은 성과주의를 가장 체계적으로 제도화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대표 사례가 생산성격려금(PI)과 초과이익성과급(PS)이다. PI(Productive Incentive)는 목표달성 여부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이다. 이후 명칭은 목표인센티브(TAI·Target Achievement Incentive)로 변경됐다. 회사·사업부·개인 평가 결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구조다.

PS(Profit Sharing)는 목표이익 초과분을 배분하는 성과급 제도다. 사업부 실적과 경제적부가가치(EVA)를 기반으로 지급됐으며 최대 연봉의 50% 수준까지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물론 삼성이 성과주의를 체계화하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일부 기업들은 영업이익을 성과급의 재원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외환위기를 거치며 EVA와 조직평가, 핵심성과지표(KPI) 등을 결합한 복합 성과급 체계가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사업부와 조직 평가에 따라 성과급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직원들은 사업부 실적과 평가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왜 이 금액인가”…산식 공개 요구하는 MZ세대

대기업 성과급이 사회적으로 다시 주목 받은 계기는 2020년 초반 'MZ 노조'의 등장부터다.

과거에는 성과급 규모 자체가 중요했다면 최근 젊은 직원들은 “왜 그 금액이 나왔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 직원들은 학창시절부터 상대평가와 수치화된 성적 시스템에 익숙한 세대로 꼽힌다. 자신의 점수와 보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문화에 익숙하고 공정성 문제에도 민감하다.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문 앞에서 열린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 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정소희 기자]

노동계에서는 세대 변화 자체가 기업 보상 체계와 노사문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노동계 전문가는 “요즘 세대는 개인 중심 문화 속에서 성장한 세대”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율해주는 사람에게는 반응하지만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개입한다고 느끼면 거부감도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 역시 1991년생으로 젊은 세대 흐름 안에 있는 인물”이라며 “앞으로 이런 세대가 사회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기업 문화와 노사관계도 계속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블라인드 등 익명 커뮤니티 확산과 맞물리며 기업 성과급 문화 자체를 바꿨다고 보고 있다.

2021년 SK하이닉스에서는 한 주니어급 직원이 성과급 지급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며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전 임직원에게 공개 이메일을 보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직원들은 “회사가 얼마를 벌었는데 왜 이 정도만 받느냐”는 문제를 제기했고 핵심 쟁점은 성과급 규모 자체보다 산식의 불투명성이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 지난달 20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에서 열린 '2026년 동반성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 협력사 대표들에게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결국 SK하이닉스는 기존 경제적부가가치(EVA) 방식 대신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 제도를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성과급 재원’ 역시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한국 기업 성과주의를 가장 정교하게 설계했던 삼성이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영업이익 공식 모델 앞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성과급은 이제 단순 보너스 개념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바뀌고 있다”며 “삼성전자 노사의 재협상 결과에 따라 반도체 업계에서 시작된 논쟁이 다른 산업으로도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개인 성과와 주가에 연동된 주식보상(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 체계를 확대해온 것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 영향으로 전사·사업부 단위 영업이익 배분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박지은 기자([email protected]),황세웅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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