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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둘 공간이 없어요"...비좁은 연구실에 갇힌 K-로봇의 꿈


GIST 이규빈 소장 "로봇 들이려면 학생 좌석 치워야"
국가 R&D 예산 규정상 공간 확보 비용은 '간접비' 항목
"R&D 예산 지원시 중복 투자 우려·형평성 문제" 우려도

[아이뉴스24 설재윤 기자] 다관절 로봇 팔 바로 옆으로 듀얼 모니터와 서류 뭉치가 빼곡하다. 실험실 안전 기준에 맞게 펜스 안에서 실험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 책상 위는 노트북과 부품 상자로 여유 공간이 전혀 없다. 선반까지 빈틈없이 꽉 차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 연구실의 최근 모습. [사진=이규빈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장 제공]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 연구실의 최근 모습. [사진=이규빈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장 제공]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 연구실의 최근 모습이다. 초창기에는 연구실 면적의 4분의 1 정도가 로봇 실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공간을 로봇 실험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구를 위해 곧 휴머노이드 로봇을 추가로 들여올 예정이지만, 학생들 좌석을 포기하지 않으면 로봇을 놓을 공간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규빈 GIST 인공지능연구소장은 "학생들이 비좁은 환경에서 한 대의 로봇을 공유하다 보니 연구 기간이 불필요하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며 "로봇 3대를 살 예산이 있어도, 정작 이를 두고 실험할 공간이 없어 1대만 도입해 돌려쓰고 있다"고 전했다.

로봇 연구실의 공간 부족 문제는 스타트업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특히 휴머노이드·자율주행 로봇의 경우 보행과 이동을 실증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감당할 인프라는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A사는 최근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사족보행 로봇과 보스턴다이나믹스 '스팟'을 활용해 항만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현재 보유한 연구 공간 만으로는 로봇 실험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A사는 더 넓은 연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KDB산업은행에서 진행하는 공모 사업에 도전했으나 탈락하며 이사 계획이 무산됐다.

A사 사정에 밝은 한 대기업 임원은 "카이스트 학생들 주도로 설립돼 기술력과 가능성을 두루 갖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실증 인프라로 옮겨갈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 연구실의 최근 모습. [사진=이규빈 광주과학기술원(GIST) 인공지능연구소장 제공]
K사가 연구소 인근 부지를 임대해 개발 중인 자율주행 건설 로봇 [사진=설재윤 기자]

대형 건설용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는 B사 역시 로봇을 테스트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연구소 인근 공장을 추가로 임대해 실험실로 사용 중이다.

이처럼 연구와 사업화 현장이 열악한 배경에는 국가 R&D 예산의 경직된 용도 제한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규정상 연구 공간 확보 비용은 '간접비' 항목에 묶여 있어, 국가지원금(직접비)을 통해 실험 공간을 임대하거나 외부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쓸 수 없다. 로봇 기술 고도화를 위해 연구비를 따내도, 정작 그 로봇을 실증할 공간을 쓰는데 단돈 1원도 쓸 수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 소장은 "로봇 관련 실험 공간을 위해 공간 사용료를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연구개발비 사용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 소장은 정부 R&D 사업에서 공간 확보 조건을 명시하는 것이 오히려 현장 연구자들에게는 힘이 된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과제 선정 조건에 공간 확보 유무가 포함되면, 연구자가 소속 기관이나 학교 본부에 정당하게 연구 공간 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절차적 근거가 마련된다"며 "현장 연구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는 점에서 공간 확보 조건을 다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제 예산 규모와 실질적인 인프라 유지 비용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도 과제다. 이 소장은 "연구비로는 인건비와 재료비를 충당하기도 벅찬데, 공간 사용료까지 지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로봇 분야는 공간 확보를 위한 비용만큼 연구비를 증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예산 집행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중복 투자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며 "특정 기업의 니즈만 반영한 공간을 구축하는데 비용을 지원해주는데 있어 형평성 문제에 있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하드웨어 플랫폼을 옮기고 인력을 파견하는 데 막대한 자원이 소요되는 현장의 어려움도 인지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대안으로 정부는 2027년 가동 예정인 '국가로봇테스트필드' 등 대규모 공용 인프라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는 현장의 상시 연구 공간 부족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다.

테스트필드는 최종 단계의 로봇을 검증하는 외형적 실증 시설인 반면, 학교 연구조직이나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것은 로봇을 상시 수정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기초 연구 거점이다. 거점 인프라가 구축되더라도 당장 연구실 내 로봇 수용 공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내 로봇 산업 발전 속도는 느려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로봇 산업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국은 정부 주도로 실외 테스트 단지와 실내 R&D가 결합된 통합형 인프라를 제공한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에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를 구축하고, 100대 이상의 로봇을 동시에 훈련할 수 있는 대규모 테스트베드를 가동 중이다. 이 곳에서는 단순히 로봇을 시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망 기업들이 입주해 공용 데이터셋을 공유하며, 상시 협업하고 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정부와 지자체가 테스트베드를 구축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기존 인프라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지 못해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홍보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공간과 장비, 예산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K-로봇 연구 생태계'의 재설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재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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