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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세상에 없던 제품 세상에 없던 노조


삼성전자 노조 위원장께 드리는 편지

[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존경하는 위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봄은 또 어김없이 왔지만, 시절은 더없이 수상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란은 혼자 죽을 수 없으니, 석유를 볼모로 삼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했습니다. 기름값은 치솟고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이 봄에 덜덜 떨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7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 HBM4, HMB4E 메모리가 전시돼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
지난 18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7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 HBM4, HMB4E 메모리가 전시돼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

이 수상한 시절에 위원장님께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은, 좀 먼 이야기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생각해야 할 일을 논의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삼성전자가 혁신 기술 기업이라 생각합니다. 혁신 기업 본질은,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아직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일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존 제품의 기능과 성능을 개선하고 완전히 새로운 제품도 개발해야겠죠. 기업을 흔히 ‘두발자전거’에 비유하는 이유도 이 일을 쉬는 순간 넘어지기 때문이겠죠.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등에서 혁신의 모범을 보여왔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때문에 겪었던 큰 위기도 최근에는 잘 돌파하는 듯합니다.

위기의 속성은 그런데 한 번 건너면 끝나는 강이 아닌 듯합니다. 풍랑은 몰아치는데 영원히 육지에 닿을 수 없는 바다와 비슷합니다. 내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언제든 세상에 없던 제품으로 시장을 흔들 것이기 때문이죠. HBM 하나로 삼성전자 메모리의 30년 아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걸 직접 경험하셨을 겁니다.

기업이 진짜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없던 제품’입니다. 그리고 저는 세상에 없던 제품의 결정판이 ‘인간을 닮았으면서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형 로봇’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 대신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주체가 되겠죠. 미국 빅테크를 주도하는 인물들은 그런 세상이 10년 안에 온다고 말합니다.

이 예측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라면 그때 노사(勞社)는 어떤 관계일까요. 그때도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내는 사(社)는 존재하겠지만, 노(勞)가 어떻게 될지는 가늠조차 하기 힘듭니다.

위원장님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런 세상이 오면 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노동의 필요성이 확연히 줄어드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장 문을 막고 로봇을 불태울까요.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없던 노조’를 생각해 본 겁니다. 노조도 과거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 노동이 훨씬 덜 필요하고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결국 인간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방법밖에 없을 겁니다. 고용과 임금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말이죠. 노조도 지금부터는 그 시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유해·위험 요인에 대응한 노동인권 증진 방안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로봇과 함께 일하는 노동자 90%가 “고용 불안을 겪고 있다.”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질 겁니다. 노동조합은 이 불안의 핵심 당사자이고, 해결에 나서야 할 주체입니다.

꿈같은 이야기를 해볼까요. 고용 축소와 임금 삭감 없는 주 3일 하루 4시간 근무. 진짜 꿈 같죠. 그런데 과연 이게 이룰 수 없는 꿈이기만 할까요. 그게 단지 꿈에 지나지 않는다면 지능형 로봇 시대는 인간에게 재앙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없던 노조’가 바라봐야 하는 목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닐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일단 노조가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측과 적대적으로 대결하는 전투 노조보다 긴밀하게 토론하는 일자리 설계 주체가 돼야 합니다.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의 변화 및 분배 그리고 재교육까지 정밀한 로드맵을 설계하고 현장에서 시나브로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게 노조가 혁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바뀌면 작은 양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큰 목표가 있다면 그 양보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작은 일에 무리하게 집착하면 목표를 잃고 큰 실패를 맛보게 되겠지요.

하나의 유령이 지금 온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비인간 지성’이라는 유령이.

뜬금없고 거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균성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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