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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NOW] 기후소송, 한국 기업도 남의 일 아니다


페루의 산악 가이드 한 명이 독일 에너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이 소송은 지금 기후법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2015년 사울 루시아노 유야(Saúl Luciano Lliuya)는 독일 에너지 기업 RW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안데스 빙하가 녹으면서 페루 고향 마을의 빙하 호수 범람 위험이 높아졌고, 그 방벽 설치 비용의 0.47%를 RWE가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 청구의 골자였다.

청구 금액 자체는 크지 않았다. 이 소송에서 독일 함(Hamm) 고등법원이 확인한 원칙은 작지 않았다.

양희 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시니어컨설턴트. [사진=법무법인 화우]
양희 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시니어컨설턴트. [사진=법무법인 화우]

1심은 인과관계 입증 부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법원은 결정적 판단을 내놓았다.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 기업이 독일 민법(BGB) 제1004조에 따라 기후 관련 피해에 원칙적으로 민사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등법원 차원에서 이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였다.

법학계는 이를 ‘승리 없는 성공(success without victory)’이라 부른다. 원고가 이긴 것은 아니지만, 방어 논리는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그동안 기업들이 활용해 온 이른바 ‘드롭 인 디 오션(Drop in the Ocean)’ 논리, 즉 ‘전 세계 배출량 중 우리 몫은 극히 일부’라는 항변이 법적 효력을 잃게 됐다.

기여도가 작다는 사실이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사법 무대에 선 것이다.

이 판결이 일회성 사건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런던정경대(LSE) 그란섬(Grantham) 연구소가 2024년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후 소송 누적 건수는 이미 약 3000건에 육박하고, 소송이 접수된 국가는 약 60개국에 달한다.

특히 신규 소송의 약 20%는 기업 또는 임원을 직접 겨냥하고 있으며, 소송 대상 기업의 범위는 이제 식품·금융·컨설팅을 망라한 전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기상재해 피해를 특정 기업의 탄소 배출에 귀속시키는 손해배상 소송이다. 2021년12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오뎃(Odette)은 40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생존자 103명은 최근 Shell을 상대로 영국 왕립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Shell의 역사적 탄소 배출이 태풍의 피해 강도를 심화시켰다는 것이 핵심 논거다. 이 사건은Shell 본사가 있는 영국 법원에서 필리핀 법을 적용받는 구조로 진행된다.

특정 기상재해의 피해를 기업의 구체적 행위에 귀속시키려는 세계 최초의 대규모 민사소송이라는 점에서,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이 실제 법정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 번째는 기업의 기후 약속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를 문제 삼는 그린워싱(Greenwashing) 소송이다. 뉴욕주 검찰총장은 2024년 2월 세계 최대 육가공 기업 JBS US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40년까지 넷제로(Net Zero) 달성’이라는 광고 문구가 소비자 보호법을 위반한 허위 표현이라는 이유였다.

JBS 그룹은 이 선언을 발표할 당시 자사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고, 달성 계획의 경제적·기술적 실현 가능성도 검토하지 않았다. 결국 JBS USA는 뉴욕주 검찰과의 합의를 통해 구체적인 이행 조치 없이는 ‘서약(pledge)’이나 ‘확약(commitment)’ 같은 표현을 광고에 쓸 수 없게 됐고, ‘목표(goal)’라는 표현만 허용됐다.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 그것이 그린워싱 소송의 본질이다.

국제적 흐름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2024년 5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가 자문 의견을 내놓은 데 이어, 현재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파리협정의 1.5°C 목표를 법적 구속력 있는 기준으로 확인하는 자문 의견을 심리 중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이러한 국제법적 흐름을 직접 인용하며 정부에 기후 적응 계획 수립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른바 ‘보나이르 기후소송’으로, ICJ 의견 이후 나온 첫 번째 국내 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국제 기준이 실제 사법 판단에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2026년부터 시행되는 EU의 ‘소비자의 친환경 전환을 위한 역량 강화 지침(ECGT)’은 제품 광고의 판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 배출권 구매(오프셋)에 의존해 ‘기후 중립(Climate Neutral)’을 주장하는 표현은 전면 금지된다.

입증 자료 없는 포괄적 친환경 주장도,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과 제3자 검증이 없는 미래 약속도 그 자체로 그린워싱에 해당하게 된다. 단순히 나무를 심거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친환경 기업’ 타이틀을 유지할 수 없다.

기업은 제품 생애주기 전체에서 실질적인 감축이 일어났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기후소송의 파장은 법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2025년 가이드라인을 통해 은행에 기후소송 리스크 식별 의무를 부과했고, 기관투자자들도 이를 기업 평가의 핵심 요소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기후소송에 노출된 기업은 금융 비용도 높아지고, 투자 유치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결국 기업을 지켜주는 것은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고 있다’는 증거다. 넷제로 계획의 실제 이행 현황을 점검하고, 공급업체의 정보까지 검증하며, 법무와 ESG 팀이 협력해 자사의 과거 배출 데이터와 공개 발언이 불러올 수 있는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기후 책임이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시대는 이미 열렸다. 한국 기업에게 기후소송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양희 시니어컨설턴트(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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