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영토는 동서 2500킬로, 남북 1400킬로의 광대한 고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몽골고원은 해발 고도 1000미터에서 1500미터 사이 건조한 고원 지역이다.
영토는 넓은데 인구는 350만 명 수준으로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 광대한 영토 주민의 '대륙성 기질'은 생태적 환경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든다. 넓은 영토에 사는 사람에게 공간, 시간의 개념은 좁은 영토의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광대한 사막에서 삶의 지혜는 느림, 기다림, 여유로움이다.
'서두르면 라싸에 못 간다'는 티베트 속담이 있는데, 광활한 대지에 살아가는 느림의 지혜이다. 과거 초원과 사막의 유목민은 4계절 초지를 이동하며 살기 때문에 정주민 국가처럼 도시가 없다. 당연히 성곽이나 건물 등 역사적 유적도 없다. 초원을 이동하는 삶이라 무덤도 없다. 칭기즈칸의 무덤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초원에 그냥 매장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과거 초원에 사는 유목민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책자도 없다. 흉노족, 돌궐족, 선비족 등 고대 몽골고원 유목민 역사는 중국 사가(史家)들이 기술한 것이 대부분이다. 중국 사가들은 흉노족 등 유목민을 비하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실제보다 흉악하고 야만적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연간 강수량이 20~50밀리이고, 주로 여름철에 비가 오기 때문에 사막에 초지(草地)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고, 초지에는 목축하는 게르 천막들이 가끔 나타난다. 가끔 소나 말들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고 소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현재 몽골은 지하자원 매장량이 매우 많다고 한다.
몽골의 자원을 탐사한 일본 기술자는 "몽골인들은 보석과 황금이 묻힌 땅 위에 오두막집을 짓고 산다"고 비유했다. 미래 잠재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이다. 고비사막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시베리아 도로보다 잘 정비되어 있다. 몽골은 중국 경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는 도로를 잘 유지 보수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사막의 정중앙에 길게 뻗어있는 길은 드라이브 하기에 환상적이다. 통행하는 차량도 많지 않다. 텅 빈 광야에 우리들 차만 신나게 달린다. 사방 어디에도 산도 없다. 거대한 평원, 나무 한 그루 없는 600여킬로 먼 거리의 단조로운 광야의 경치를 보는 것도 편안하다.
우리는 몽골고원을 지나 남쪽의 고비사막으로 들어선다. 몽골고원 남쪽 지방과 중국 내몽골 북쪽에 위치한 '고비사막'은 동서 1400킬로, 남북 800킬로의 큰 사막이다. 몽골 말로 '고비'는 '사막' 뜻이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면 '인생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여기 '고비' 단어가 고비사막에서 왔는지 궁금하다.
차량을 수리한 덕분에 고비사막을 잘 지나고 있다. 7월 중순 한여름임에도 건조한 날씨 덕분에 공기가 가벼움을 느낀다. 차량 밖은 열사의 작렬하는 햇볕이다. 7월 중순 사막의 한낮 기온은 40도를 넘어서고 있다. 겨울은 영하 20, 30도 이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사막성기후의 특징은 여름은 혹서, 겨울은 혹한과 강풍이다. 대륙성 기후 사막에서 살아가는 삶의 척박한 환경을 말해준다.
고비사막은 메마르고 딱딱한 대지의 사막이다. 가끔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면 모래가 자동차 앞 유리로 쏟아진다. 몇 년씩 비가 안 오고, 혹한이 오고, 갑자기 질병이 돌아서 생존이 어려워지면, 생존을 위한 주변국 침략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유목민 전사의 호전성, 잔혹성, 공격성은 척박한 환경과 생태계가 만든 것이다. 어린 나이인 2, 3살부터 말을 타고, 어린 시절부터 사냥과 전투를 치르면서 자연히 용감한 전사가 될 수밖에 없다.
고비사막은 지리적으로 비가 안 오는 곳이다. 사막에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근처 바다에서 수증기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고비사막은 남쪽의 태평양, 북쪽의 북극해 등 바다와 너무 멀리 떨어져 내륙에 갇혀 있다. 수증기를 품은 구름이 오기에 너무 먼 내륙이다. 우리 땅은 지정학적으로 삼면이 바다이고, 일년내내 수시로 비가 내리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좋은 항구가 있어 사람 살기에 좋은 입지이다. 나라 입지에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든다.
역사의 발전에는 '중심국, 주변국, 중간의 반(半)주변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역사상 아시아 대륙의 '중심국'은 항상 중국이다. 가끔 몽골고원을 통일한 '유목제국'이 중심국이 된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중심국은 '서유럽' 국가로 이전되고, 현재는 '미국'이 중심국이다. 미국은 중국이 중심국으로 다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고 현재 무역전쟁, 기술 전쟁을 하고 있다.
강대국인 고대 중국은 북쪽 몽골고원과 돈황 서쪽의 유목민 부족을 항상 두려워했다. 이들을 '북적(北狄), 서융(西戎)' 의도적으로 야만인으로 비하하면서, 두려움으로 고비사막 경계선에 만리장성을 쌓아서 지켰다. 중국은 우리를 동쪽의 오랑캐 '동이(東夷)족(族)'이라고 부르면서, '동방예의지국'으로 치켜세웠다. 우리 조상은 침략도 안 하고, 중국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니 살짝 예의 바르다고 칭찬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항상 강대국의 '주변국'으로 약소국의 비애를 겪고 살아왔다. 주변국은 대륙의 중심국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마다 침략을 당하게 된다. 수나라 침략, 당나라 침략도 새로운 대륙의 통일왕조가 생기면서 시작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잔혹한 침략 전쟁은 몽골 침략 전쟁(1231~1270년)이다.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 시대이다. 무신정권 실권자 최 씨 정권은 강화도로 수도를 천도하고, 본토는 39년 동안 몽골 군대와 장기간 전쟁으로 전 국토가 유린당하였다. 비겁하게 고려의 지배층은 도망가고, 본토의 백성은 40여 년 동안 도탄의 삶을 살았다.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중기 이전 대부분 목조 유적이 몽골의 약탈 또는 화재로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은 몽골 침략 이후 고려말에 지어진 것이다. 다시 16세기 말 일본의 '임진왜란'으로 고려 후기 만든 건물은 또다시 대부분 소실 된다. 현재 남아 있는 목조 유적은 대체로 임란 후 숙종, 영조 때 건축된 것이다.
몽골 군대와 39년 동안 최장기 전쟁을 치른 국가는 고려가 유일하다. 고려 군대가 강해서 오랫동안 전쟁을 한 것은 아니다. 강화도가 섬이라 몽골이 바다를 무서워한 것도 아니다. 몽골 군대는 중국 북부의 금나라. 양쯔강 이남의 남송(1279년 멸망) 정벌에 전력을 집중했다. 동서 교역로 실크로드 지역인 서쪽의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 정벌에 군사력을 집중하였기 때문에 고려에 집중하지 아니했다. 장기간 승산도 없는 무책임한 전쟁을 40여 년 하는 동안 육지에 남아 있는 백성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고려는 늦게 항복 후 몽골의 부마국으로 속국 상태를 유지했다. 몽골족에게 산악이 많은 고려는 유목하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다. 몽골인들이 한반도에 이사 와서 살지 아니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무신정권이 몽골과 전쟁 중 강화도에서 만든 '팔만대장경'이 고려의 대표적 유적이다. 팔만대장경은 전시 막대한 국가 재정을 군사비에 안 쓴 순진함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공항은 출국과 입국이 24시간 가능하다. 반면, 육상 국경 출입국 업무를 중국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개방한다. 중국은 저녁 8시 이후 야간과 토요일, 일요일은 국경 개방을 아니 한다. 부득이 몽골의 최남단 변방 '자민우드'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일찍 중국 국경을 통과할 계획이다. 메마른 고비사막의 바다를 680킬로 달려서 몽골의 최남단 변방 '자민우드'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고비사막 자민우드는 중국에 들어가는 화물차 기사들의 하루 숙박지이다. 우리 같은 여행객 차량은 없고, 울란바토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보따리상도 거의 안 보인다. 사막도시 '자민우드' 지역에서 인상적인 것은 제비들이 무척 많다는 점이다. 우리는 농약 살포로 제비가 거의 안 오는데, 오지인 고비사막에 많은 제비들이 주택 처마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시베리아 마을에서도 많은 제비를 보았는데, 사막의 작은 도시에 사는 제비들은 신기하다. 우리는 몽골 최남단 시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새벽 일찍 중국에 입국해야 한다. '자민우드' 숙소를 울란바토르에서 예약하고 출발했는데, 구글맵을 켜고 주택가를 한참 돌아다녀도 찾을 수 없다. 부득이 다른 초라한 여관을 찾아서 숙소를 잡았다. 밤 9시경 당초 예약한 여관에서 왜 안 오느냐 연락이 왔다. 이유를 확인해 보니 구글맵에 여관 주소가 잘못 입력되어 우리가 못 찾은 것이다. 우리는 여관 주인에게 구글맵 주소를 정확하게 수정하라고 제언을 해 줬다.
고비사막의 '자민우드'에도 한국식당이 있다. 저녁을 감자탕으로 시켰는데 정말 맛이 없다. 몽골 변방에도 한국브랜드 커피숍, 24시간 편의점이 많다. 아침 식사는 한국브랜드 '카페베네' 커피숍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해결하고, 오전 9시 개방하는 국경에 줄을 서기 위해 아침 8시 일찍 출발한다.
벌써 화물차가 길게 줄지어 있다. 몽골의 출국수속을 마치고, 100미터 걸어가면 중국 국경이 나온다. 역시 자동차가 통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입국 절차는 러시아처럼 역시 까다롭다. 군인, 경찰, 세관, 출입국 부서 등 여러 기관에서 검사를 한다. 오전 내내 기다리며 중국입국 수속을 마치니 12시가 넘었다. 실크로드 출발지 중국에 들어오니 내심 안도감이 든다. 시베리아, 몽골 구간 자동차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중국 땅 내몽골 고비사막에 '엘렌하우터'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몽골로 출국과 입국을 위해 하룻밤 묶어가는 화물차와 여행객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중국의 국경 통제규제가 두 나라 국경에 신설 도시를 만든 것을 목격하면서 무역하는 기업인의 애로를 생각한다. 중국의 엘렌하우터는 고층아파트, 넓은 가로수, 시내 공원 등 사막 속의 녹색 오아시스 도시이다.
수백 킬로 멀리서 물을 끌어오는 중국 정부의 투자 덕분이다. 반면 바로 인접한 몽골의 자민우드는 나무가 거의 없는 메마른 도시이다. 잘사는 나라에 사는 국민의 풍요로움을 잠시 비교하게 된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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