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망막 손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인공 망막’ 기술은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시각 신경 세포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환자를 돕기 위해 약물 치료나 유전공학적 접근, 줄기세포를 이용한 생체이식 등 다양한 방식의 시각 복원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인공 망막 연구는 인체에 적용할 의료기술로써 연구 과정에서 동물실험이 주를 이룬다. 실험동물에 망막 질환이 발생하도록 유도한 후 인공 망막 기술의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는 적지 않은 연구비와 시간이 투입된다. 예상치 못한 실험적 변수들도 기술개발에 발목을 잡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센서시스템연구센터 김재헌 박사, 송현석 박사팀과 뇌융합기술연구단 김홍남 박사팀은 동물 실험을 하기 전에 생체 외 세포 실험으로 인공망막의 시각 기능을 검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인간과 같은 수준의 시각 기능을 갖는 인공 광수용체를 제작하고, 이 인공 광수용체에서 빛을 받아 생산된 전기적 신호가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인공 시각회로 플랫폼을 개발했다.
![눈과 시신경, 뇌로 이어지는 사람의 시각 시스템을 하나의 디바이스안에 광반응성-신경세포(photospheroid) 스페로이드를 활용해 모사한 모델. 신경세포 안에 인간 광수용체 옵신 단백질을 생산해 빛에 대한 반응성 기능을 추가하고, 디바이스 안에 일반-신경세포(intact spheroid)와 배치해 신경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왼쪽 광반응성-신경세포에 빛으로 자극하면, 신경돌기를 따라 일반-신경세포로 신경신호가 전달된다. [사진=KIST]](https://image.inews24.com/v1/17b947bc0982c7.jpg)
인간의 망막은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원추세포는 빨강, 초록, 파란색 세 가지 색감을 구분하는 광수용체 단백질(옵신)을 생산하고, 간상세포는 명암을 구분하는 광수용체 단백질(로돕신)을 생산한다. 인간의 눈은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 망막에서 맺혀 상을 형성하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사물을 본다.
인공 광수용체 기반 시각 복원 기술을 다년간 연구해 온 KIST 연구진은 지난 2018년에 옵신 단백질 생산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를 세포 단위로 확장해 신경세포에 옵신 단백질을 적용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로돕신과 청색 옵신 단백질을 발현하는 스페로이드를 제작했다. 스페로이드(spheroid)는 다수의 세포가 모여 하나의 구(球)를 이루며 조직화된 세포 덩어리를 말한다. 신경세포는 수명이 짧고 생존력이 약해 기존의 인공 망막 연구에서 사용해 온 방법으로는 인공적으로 광수용체 단백질을 발현시키기 전에 신경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괴사하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경세포를 스페로이드라는 군집 형태로 만들어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높임으로써 안정적으로 인공 광수용체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존에는 2차원 세포배양 시 광수용체 단백질을 주입했을 때 50% 이하의 신경세포들만 생존했다면, 신경 스페로이드를 활용하면 80% 이상의 생존율을 보였다.
색 구분이 가능한 광반응성 스페로이드는 외부에서 받은 빛 정보를 신경신호로 전환해 세포 몸체에서 외부로 신호를 전달한다. 신경세포에서 뻗어 나온 신경다발인 엑손(axon, 축삭돌기)을 따라 방사적으로 신호가 전달된다.
이번 연구의 주안점은 인공적으로 제작한 광수용체에서 빛을 받아 생산된 전기적 신호가 다른 매개체로 전달이 가능한지를 검증하는 게 목표였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눈을 모사한 광반응성 신경 스페로이드와 뇌를 모사한 일반 신경 스페로이드를 연결해 색을 감지하고 이를 뇌에 전달하는 시신경 회로를 구현했다. 이를 통해 신경전달이 확장되는 과정을 형광 현미경을 통해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뇌가 어떤 과정에 의해 망막에서 발생한 신호를 인지하는지, 즉 자극받은 조직에서 감각을 느끼는 조직으로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각신호 전달 모델을 만든 것이다.
신경 스페로이드와 인공 광수용체를 체외에서 결합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신경 스페로이드 자체는 이미 많이 상용화되어있는 세포를 뭉치는 기술이지만, 기존에 연구되었던 단순 신경 스페로이드 또는 오가노이드의 배양이 아닌 광수용체가 발현된 신경 스페로이드(눈)와 단순 신경 스페로이드 (뇌) 사이에 회로를 구성해 시신경을 구현했다는 것이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헌 박사는 “인공 광수용체의 시각신호 전달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검증함으로써 동물실험 의존을 줄이고 연구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앞으로 인간이 볼 수 있는 모든 색을 인식할 수 있는 스페로이드를 생산해 시각 관련 질환 및 치료에 대한 테스트 키트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먼 미래에는 인간의 망막 내 세포들을 자유자재로 생산하고 세포층까지 구현해 시각 손상이 심한 분들에게 이식을 통한 치료 기술을 제공할 계획"이다.
KIST는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라는 이름으로 부서 간 융합연구를 통해 도전적이고 인류에 공헌하는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연구도 KIST 내 서로 다른 연구부서의 전자, 기계, 화학, 생명공학자들이 함께 진행한 결과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 논문명: Eye-mimicked neural network composed of photosensitive neural spheroids with human opsin proteins (doi.org/10.1002/adma.202302996)
/최상국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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