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은행업에서 대규모 횡령 사고와 일탈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은행의 횡령 규모는 2020년 8억2000만원에서 2021년 72억8000만원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739억7000만원으로 5년 사이 100배 가까이 불어났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금액도 612억6000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올해 경남은행에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2988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횡령 사고만이 아니다. 국민은행에선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 예금 계좌 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해 1662개 증권 계좌를 불법 개설했다.
횡령과 금융사고 재발을 위해선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내부통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느냐에 대한 입장차다.
금융당국과 감독 당국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를 마련하지 않아 금융사고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지난 12일 대구은행 금융사고에 대한 검사 결과에서 "(횡령 사고는 대구은행이) 위법·부당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데 기인한다"며 "금융감독원은 사고자 및 관련 임직원에 대해 금융실명법 등 법규 위반과 내부통제 소홀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금융회사에선 횡령과 금융사고 원인을 개인의 일탈로 주장한다. 이미 DGB금융지주는 내부통제 규정을 두고 감사위원회를 통해 감시하고 있다. 연 1회 준법감시인을 통해 실태 점검도 하고 있다. BNK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도 마찬가지로 내부통제 기준을 별도로 마련했다.
금융권에선 개인의 일탈을 막기 위해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CEO 제재로 몰아가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CEO가 직원 개인의 일탈을 예상할 수 있느냐"며 "개인의 일탈까지 CEO가 책임져야 한다면 누가 CEO를 하려 들겠느냐"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감독 당국은 2018년 사모펀드 사태 이후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CEO를 경질했지만, 금융사고는 줄어들지 않았다. 2021년 4월 금감원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라임 사태에 따른 내부통제 소홀을 이유로 문책 경고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금융은 700억원대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고, 올해도 횡령 사고가 재발했다.
법원에서도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을 들어 CEO에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판결했다. 지난 2021년 8월 27일 서울행정법원 제11부(강우찬·김수현·위송)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문책경고 취소 소송에서 "금감원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해석·적용을 잘못했다"며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었다. 중대 금융사고 발생 시 직접 제재 규정이 없다고 해서 '준수 의무'를 '마련 의무' 위반으로 바꿔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금융당국에선 일명 '금융 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 불리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에 CEO의 준수 의무를 부과해 제재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과 감독 당국이 유연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준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내부통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묻는 과정에서도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실패나 운영 또는 관리 감독의 소홀'이 아닌 '세부적이고 지엽적인 실무 관련 사항을 내규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재 사유로 제시하고 있다"며 "한정된 규제 체계로는 금융사고를 근절하는 데 효과적일 수 없고 실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